이동식 에어컨 있어도 사실상 무용지물
차양막 등 더위 피할 공간 없는 곳도
새벽시간 근무도 더위에 땀 범벅
구조상 사람이 버틸 수 밖에 없어

체감기온이 35도를 훌쩍 넘기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길거리 행인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등 외부 활동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일부 노동현장에선 어쩔 수 없이 폭염을 견디며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익부 빈익빈 건설근로노동자
11일 오전 10시 대전 서구 한 도로 하수관로 공사현장, 근로자들은 땅을 파고 자갈과 모래를 채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직 아침 시간임에도 작업자들의 얼굴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작업자 A 씨는 “매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시간이라 종료시간까지 일을 끝내기 위해 따로 쉬는 시간을 두고 있지는 않다”며 “가장 더운 2시쯤에는 얼음물을 마시고 나무그늘에서 조금씩 쉬어가면서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작업자 B 씨도 “점심 시간 이외에 쉬는 시간은 없다. 빨리 일을 끝내는 게 쉬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따로 마련된 휴식공간 없이 아름드리 나무만이 작업자들의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그나마 아파트 공사 현장은 도로를 정비하는 근로자보다 상황이 나았다. 아파트 공사 작업자 C 씨는 “아파트 공사 현장은 40분 근무 20분 휴식을 지키고 있다”며 “특히 제일 더운 시간인 오후 2시 30분부터 1시간은 쉬는 시간으로 일을 하지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따로 설치된 몽골텐트 안에 얼음물과 이동식 에어컨이 마련돼 있어 근무 중 더위에 지칠 때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고 덧붙였다. 건설 업계 관리직 D 씨는 “현장마다 여건은 다르다. 일부 현장에선 텐트와 에어컨까지 준비된 반면 어떤 곳은 전봇대 그림자 외엔 쉴 곳이 없다”고 말했다. 온열질환에 대한 경고 속에서도 작업자의 인내를 강요하는 공사현장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소규모 현장이 특히 그렇다.

◆에어컨도 무용지물
산업현장에선 실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여건상 에어컨을 사용하기 어렵거나 설치가 돼 있지 않아 더위와 사투를 벌이는 생산직들의 여름도 뜨겁다. 한 공장에서 근무하는 E 씨는 “너무 더워서 얼음을 가지러 가는 것도 번거로워 집에서 얼음물을 가져와 마시고 있다. 이동식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일하면서 바람을 쐴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에어컨을 가까이 놓고 싶어도 먼지가 많은 공정 특성상 어렵다”며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더 더워지면 어떻게 버텨야할 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또 다른 공장 근로자 F 씨는 “사무실은 시원하지만 현장은 에어컨을 놓을 수 없어 덥다”며 “30분만 일해도 땀이 온몸을 적신다”고 말했다.

◆생계 위한 시장 상인의 사투
볕이 더욱 뜨거워진 오후 1시 오정동농수산물시장, 적게는 2㎏부터 많게는 20㎏이 넘는 과일 박스를 이리저리 옮기고 싣고 배달하는 근로자들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가득했다. G 씨는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히는 날씨인데 일까지 하려니 너무 지친다. 쉴 공간도 없어서 너무 더우면 차 안에서 에어컨을 켜고 땀을 식힌다”며 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았다. 시장 근로자 H 씨는 “새벽 4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벽 시간은 시원하다고 생각하지만 몇 분만 일해도 땀이 분수처럼 흐른다”며 “시장에 쿨링 포그 팬이 설치됐다. 장 보러 오는 사람에게는 시원할지 몰라도 짐 나르는 일을 하는 우리 같은 경우에는 무용지물이다”라고 했다. 이어 “출근을 하면 사실상 쉬는 시간은 간식시간과 점심시간 1시간 남짓이다.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일해야 하지만 시장 내에 마땅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시장 내에 근로자들을 위한 에어컨이 설치된 쉼터가 필요하다”고 아쉬워했다.
이주빈 기자·정근우 수습기자 wg9552063@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