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지향점 속 원전 역할 대두
SMR특별법안 발의 뒤 논쟁 가열
환경단체, RE100-원전 진흥 모순
원자력단체, “보완적 관계로 봐야”

사진 = 황정아 의원실 제공
사진 = 황정아 의원실 제공

<속보>=새 정부의 첫 조각과 맞물려 에너지정책 가이드라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원전 활용도를 놓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환경단체는 기후위기 대응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산업계는 경제적 효율 측면에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대표적인 논쟁의 키워드는 ‘RE100’과 ‘CF100’인데 최근 소형모듈원자로(SMR) 특별법 제정 움직임과 맞물려 찬반 양론이 거세게 부딪치고 있다. 재생에너지에만 국한한 RE100의 관점에서 벗어나 원전을 활용한 ‘CF100’으로 현실적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는 논리가 다시 거세지고 있다. <본보 6월 16일자 6면 등 보도>

◆SMR, 해묵은 논쟁 끝낼 대안?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대전 유성을)은 지난달 12일 SMR의 기술개발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가 담긴 ‘소형모듈원자로 기술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SMR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황 의원은 법안 제안설명을 통해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낮은 출력의 모듈화된 원자로를 말하는데 경제성과 안전성 등에 있어 대형 원전의 한계를 보완한 차세대 원자력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원전 강국은 이미 SMR 개발과 관련한 지원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현행 원자력 관련 법체계로는 SMR 기술개발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미흡한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법안은 SMR과 이를 활용한 시스템의 연구·개발·실증 등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민간의 참여 진작과 SMR 기술개발을 촉진을 활성화하는 법적 근거도 담겼다. SMR특별법이 통과되면 정부는 SMR 개발 역량을 보유한 민간기업의 육성과 SMR 실증을 촉진하기 위해 부지 및 비용 지원과 SMR 관련 연구시설 장비의 이용 등에 필요한 행·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

황 의원은 “AI 각축전,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 산업구조 재편 등 변화의 물결 속에서 SMR은 안전과 혁신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원”이라며 “우리가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SMR 경쟁을 주도할 수 있도록 이번 특별법이 조속히 통과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행 대규모 원전은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에 큰 밑거름이지만 안전성 등을 이유로 한 국민·지역 수용성이 현저히 낮은데 규모를 크게 줄인 SMR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재로선 유일한 대안이라는 게 황 의원의 판단이다. 황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의 이 같은 입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신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에 방점을 찍었지만 에너지믹스의 건전성에 있어 보완재로서 원전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다. 특히 SMR의 경우 대형 원전 대체재로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쪼그라드는 환경단체 입지
문재인정부 당시까지만 해도 ‘탈핵’의 지향점에서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힘을 실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실용주의적 노선, 즉 원전을 ‘필요악’으로 간주하면서 줄기차게 탈핵운동을 펼쳐온 환경단체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대전탈핵공동행동 등 반핵단체들은 “SMR은 언뜻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체를 보면 더 위험할 수 있다”며 “SMR 건설 계획을 즉시 중단하는 등 원전진흥정책을 당장 폐기하고 모두가 안전한 탈핵로드맵을 수립하라”라고 촉구했지만 정부·여당은 언제까지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동행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균형추를 옮기고 있다.

반핵단체들은 “SMR은 언뜻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체를 보면 더 위험할 수 있다”며 “일체형 구조로 인해 사고 발생 시 냉각 여력이 부족하고 격납용기 규모도 작아 방사능 누출 위험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경제성 측면에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의 경우 경제성 부족으로 2023년 사업을 중단했다가 최근 겨우 다시 시작했고 다른 국가들 역시 개발 지연과 비용 증가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건설을 시작했거나 완료한 중국·러시아·아르헨티나의 사례에서도 예상 건설기간은 4∼5년이었지만 실제로는 12∼15년이 걸렸다. 캐나다는 지난 5월 300㎿급 SMR 4기에 대한 건설 승인을 했는데 약 21조 원의 엄청난 비용을 투입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근본적인 문제인 핵폐기물에 대한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발생은 필연이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연료를 더 자주 교체해야 하니 단위전력당 폐기물량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특히 이들은 정부와 여당이 에너지 전환에 있어 ‘RE100’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원전 진흥’을 말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이 같은 SMR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자 ㈔한국원자력학회도 적극적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0일 “24시간 중단 없는 안정적 전력 공급이 요구되는 AI 데이터센터의 경우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 전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이미 원자력을 통한 전기 구매에 나서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강조하면서 재생에너지 100%를 의미하는 RE100의 한계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진정한 탄소중립은 24시간 무탄소 전기를 공급하는 ‘CF100(Carbon-Free 100%)’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를 위해선 안정적 무탄소 기저 전원인 원자력을 활용한 전기 생산이 꼭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어 안전성과 관련해 “SMR은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통합하고 대형배관을 제거해 중대사고 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외부 전원 없이 자연력으로 냉각되는 피동형 안전계통을 적용해 노심손상확률이 기존 대형원전의 1만 분의 1 수준인 10억 년에 1회에 불과하다”고 했고 경제성과 관련해선 “미국 SMR 개발사의 특정 사업 차질을 기술 전체의 실패로 호도하고 있지만 이는 초기 개발 단계에서의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해선 “SMR이 단위 에너지당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기술 기준으로 대형 원전 대비 소폭 증가하지만 이는 향후 핵연료 기술개발을 통해 충분히 저감할 수 있다. 또 이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국가 차원의 관리 체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반박했다. 에너지 전환에 있어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대립 구도에서만 볼 게 아니라 상호 유기적인 파트너 개념으로 보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한다는 게 원자력학회의 주장이다.

◆무탄소 전력에 원전도 포함
산업계는 내친김에 무탄소 전력원에 원전을 포함시키는 걸 고려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산업계는 필요한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데 미래 첨단산업의 에너지 수요를 감안하면 무탄소전력을 재생에너지로만 조달할 순 없는 만큼 원전도 무탄소 전력원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거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4일 ‘PPA 제도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무탄소전력 초과 수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력구매계약(PPA)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에너지 소비가 많은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4대 산업을 중심으로 무탄소전력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발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철강과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의 점유율이 높아지는 범용제품 대신 고부가가치 저탄소 제품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탄소 감축 열풍이 불고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ASML 등 글로벌 원청기업들은 향후 10~15년 이내에 넷제로(탄소배출량 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공급업체들은 무탄소 전력 사용과 탄소 감축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국내 4대 산업의 전력 수요를 무탄소 전력으로 충당할 수 있는 비율(무탄소 전력 충당률)은 올해 기준 53.4%에 불과하다. 무탄소 전력이 재생에너지로 한정된 데 따른 것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연평균 8.7% 증가하는데 이는 4대 산업의 전력소비량 연평균 증가율(5.2%)를 상회해 재생에너지 수급이 개선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38년 4대 산업의 무탄소 전력 충당률은 81.6%, 2042년에도 93%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2042년 기준 부족분(RE100 가입 기업이 제출한 목표연도 평균값)은 4대 산업에서만 21.4TWh로 이는 지난해 서울시 전체 전력소비량(45.8TWh)의 약 46.7%에 달하는 수준이다.

한경협은 “최근 5개년 평균 79.4% 수준인 원전 이용률을 10%p 높이고 기존 원전을 PPA에 포함시키면 2042년까지 4대 산업의 무탄소전력 초과 수요를 해소할 수 있다. 조달 가능한 무탄소 전력원에 기존 원전을 포함시키고 동시에 원전의 이용률을 상향하면 충당률이 101.8%로 8.8%p 증가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의 일환인 RE100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고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역시 이 흐름을 쫓아가야 하는데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도 SMR을 포함한 원전을 무탄소 전력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원전을 활용해 모자란 무탄소전력을 충당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거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국내 주력산업은 경영위기와 함께 무탄소전력 사용 요구에 직면하는 등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무탄소전력을 수급할 수 있는 제도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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