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긋는 전세사기 대책
국정기획위 대책 마련 나섰지만
피해자 인정 구조문제는 그대로
청년 피해 가중에도 ‘구제 외면’
정당한 심사가능한 기구 마련을

▲ 사진=챗GPT 제작

<속보>=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대책 손질에 나섰다. 최근 국정기획위원회가 대통령실에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과 제도 개선을 포함한 신속 추진 과제를 건의하면서다. 그러나 이번 방안 역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피해자 인정 구조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본보 7월 21일자 5면 보도>

국정기획위가 제시한 주요 개선안은 소액임차인 판단 기준 시점을 담보물권 취득일에서 임대차계약일로 앞당기는 조정이다. 이에 따라 약 2000명이 새롭게 최우선변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국정기획위는 보고 있다. 이밖에도 경·공매 절차의 속도 개선, 건축법 위반 주택의 매입 대기 기간 단축, 신탁사기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태조사, LH와의 매입 협의 체계 마련 등이 포함됐다. 심의 결과에 대한 설명 책임을 강화하는 등 일부 제도 보완도 제시됐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피해자들의 핵심 요구는 구제의 외연 확대인데 국정기획위 대책은 기존 틀 안에서 기준만 일부 조정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특히 ‘피해자 인정’이라는 가장 절박한 사각지대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감이 크다. 특히 심의 결과 설명 강화 방안에 대해선 황당하다는 의견이 적잖다. 피해자들이 묻는 질문은 ‘왜 도와주지 않느냐’인데 정부가 내놓은 답은 ‘왜 도와줄 수 없는지를 설명하겠다’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지역의 전세사기 의심 피해자 김 모 씨는 “도와달라고 했더니 왜 도와줄 수 없는지를 설명하겠다고 한다. 처음부터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 못 들어온 사람들에게 납득하라고 하는 게 무슨 구제이며 대책이냐”라고 반문했다.

이 같은 불만은 결국 피해자 인정 구조에서 비롯되고 또 반복되는 양상이다. 현행 전세사기특별법은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임대인의 기망 여부, 반환 능력의 부재, 다수 주택 임대 정황 등을 바탕으로 ‘사기 의도가 있었음을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입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적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의 경우 등기 구조나 기망 행위를 스스로 해석하고 증명해야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을 받는 현실에서 이는 사실상 구조적 배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더 씁쓸한 대목은 이렇게 제도 밖에 남겨진 이들 다수가 청년이라는 부분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는 3만 400명인데 이 중 75.1%가 20~30대다. 대전의 경우 피해 건수가 3569건으로 인구 대비 피해자 수가 가장 많다. 전세가구 1만 가구당 피해자 수는 331건에 이른다.

그럼 영영 해법은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구조에 절차적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세사기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만 지우는 현 구조가 실질적인 구제를 가로막는다는 판단에서다. 박유석 대전과학기술대학교 부동산재테크과 교수는 “현재 수만 건에 달하는 전세사기 피해 사례를 공권력이 직접 조사·판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그렇다고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적으로 떠넘기는 것도 불합리하다. 피해자 인정 여부에 대해 정당한 심사를 제공하고 설명, 이의 제기, 소명 절차가 가능한 독립된 기구 또는 심의 지원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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