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리모델링으로 기능 재정비
자연광 대합실에 동선 단순화 시켜
기다림은 지루함 아닌 설렘이 되고
머물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

대전역은 늘 떠나는 이들의 뒤편에 있었다. 누군가는 서울을 향해, 누군가는 부산을 향해 기차에 올랐다. 그러나 대전역은 늘 그 자리에 남았다. 떠나는 걸음보다 남겨진 공간에 더 많은 이야기가 쌓였다. 기차는 지나갔지만 도시는 멈춤을 기억하며 천천히 변화해왔다. 누구에게는 이별의 풍경이었고, 또 누구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문턱이었다.

서울과 부산 사이 정확히 한가운데 놓인 대전은 철도의 도시로 성장했다. 산업화와 함께 달리기 시작한 화물열차, 유학생과 군인 등 뭇 사람들이 이곳에서 타고 내렸다. 플랫폼 위에는 수많은 이별과 환영이 교차했다. 도시의 시간도 기차와 함께 움직였다. 때로 빠르게, 때로 느리게 도시의 결을 바꿔왔다.

그러나 대전역은 점차 낡아갔다. 대합실은 좁았고 상업시설은 흩어져 동선은 복잡했다. 도시가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 사이 대전역은 과거 기억에 머물러 있었다. 그 멈춤을 다시 흐르게 만든 건 2017년의 새단장이었다. 그해 여름 대전역은 단순히 기차를 타고 내리는 장소가 아니라 머물고 걷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빛이었다. 대합실은 낮이면 자연광이 스며들어 환해졌고 밤이면 부드러운 조명 아래 고요하게 숨을 쉬었다. 면적은 기존의 2.5배로 늘어났다. 분산돼 있던 상업시설은 4층에 집중 배치됐고 플랫폼에서 대합실까지 이어지는 동선은 단순해졌다. 예전보다 길고 넓어진 공간은 걷는 사람들의 속도를 바꿨다. 숨이 찼던 계단은 여유로운 에스컬레이터가 됐고 기다림은 지루함 대신 풍경을 얻게 됐다.

주차장도 변했다. 선상주차장 344면과 서광장 주차장 158면 등 502면의 공간이 마련됐고 차량에서 대합실까지의 동선도 계단 없이 연결됐다. 택시 승강장도 재배치됐고 동광장 진입도로까지 정비돼 접근성이 크게 향상됐다. 그렇게 대전역 주변은 도시의 입구이자 환승의 경계가 됐다. 변화는 수치로도 나타났다. 보행 서비스 평가 등급이 D등급에서 B등급으로 상승했다. 대전역이 도시에 대해 갖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대전역이 사람이 주체가 되는 장소로 거듭났다는 얘기다.

이 변화는 단절된 도시의 동맥을 잇는 새로운 설계이기도 했다. 개편 당시 구조 기둥은 지름 800㎜에서 1500㎜로 강화됐다. 10층 규모의 복합역사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염두에 둔 조치다. 대전역을 고치는 일은 단지 외벽을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도시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재정비하는 일이었고 변화는 눈앞에 없는 시간을 향한 준비였다.

다시 출발선에 선 대전역은 지금도 하루 수만 명의 발걸음을 받아낸다. 그 발걸음 속에는 오랜만의 재회가 있고, 어쩔 수 없는 이별이 있고, 말없이 스쳐 가는 수많은 삶의 무늬들이 있다. 누군가는 도착하고 누군가는 떠나지만, 그 흐름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은 이제 하나의 움직임이 됐고 대전역은 그 모든 감정을 조용히 품어내는 공간이 됐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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