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지배하는 플라스틱 환경엔 재앙
편리함 때문에 선택했지만 어두운 이면
생산·처리 모든 단계서 탄소배출 가중
‘이번엔 될까’ 플라스틱 협약 귀추 주목

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UN) 플라스틱 오염 대응 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INC-5.2)가 열린다. 자연환경에 큰 피해를 끼치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소해보자는 취지로 2022년부터 시작됐는데 앞서 지난해 11월 우리나라 부산에서 열린 회의에서도 세계 각국은 협약 성안에 실패했다. 플라스틱 없는 삶은 먼 훗날의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지금부터 줄이지 않으면 기후위기의 시계는 더욱 빨리 돌아가고 결국 머지않아 돌이킬 수 없는 환경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는 데 모두 동의하지만 여전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다. 물론 국가 간 협약에 앞서 세계 각국의 시민이 나선다면 문제 해결은 더 쉬워질 수 있다. ‘플라스틱 다이어트’에 동참하는 것이 곧 문제 해결의 또 다른 출발점이다.

◆플라스틱 없는 삶
휴대전화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 여느 주말 오전 7시. 휴대전화부터 플라스틱 범벅이다. 더위에 많은 땀을 흘렸겠지만 몸은 화장실로 향한다. 변기 커버 역시 플라스틱이다. 양치질을 위한 칫솔도, 치약도 모두 플라스틱이다. 개운하게 입을 헹구고 물을 마시기 위해 텀블러를 찾았다. 다행히 철로 만든 제품이라고 생각할 때 아뿔싸 뚜껑은 플라스틱 재질이다. 이렇게 플라스틱은 우리 생활에 너무 많이 스며들었다. 미세플라스틱을 걸러 줄 거라 믿은 정수기 필터마저 배신했다. 배를 채우기 위한 냉장고도, 냉장고 속 감자마저 비닐에 싸여 있었다. 꺼내지 않았다. 아침은 거르고 간헐적 단식으로 대신했다. 그래도 배는 너무 고픈 나머지 먹을거리를 사고자 가까운 마트 대신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예전에 받았던 에코백을 장바구니 삼아 들고서 슬리퍼를 신었는데 슬리퍼에 작은 플라스틱 장치가 있었다. 벌써 힘든 하루다. 어찌저찌 전통시장을 찾아 감자, 달걀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별도 포장이 필요한 건 미리 준비한 신문지로 싸서 담았다. 다행히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걸 살 수 있었다. 선택지는 적었지만 없지는 않았다. 편의점에 들러 유리병에 든 두유와 종이 팩으로 된 딸기우유를 골랐다. 사고 싶은 게 아니라 살 수 있는 걸 고르기 시작한 것이다.

오후엔 조금 수월했다. 밥을 짓고 유리용기에 담긴 김치, 미리 사둔 달걀을 조리해 비벼 먹었다. 참기름 한 방울을 넣고 싶었지만 기름병 뚜껑도 플라스틱이었다. 설거지는 취지에 맞게 수제 비누와 손뜨개 수세미로 했다. 되나 싶었는데 의외로 기름이 잘 닦인다. 다만 손이 거칠어진다. 뒷정리에는 물티슈 대신 행주를 썼다.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게 플라스틱이었다. 입이 심심해 텀블러를 들고 카페로 향했다. 일반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요청했는데 얼마 못 가 흐물거려 결국 그냥 마셨다. 커피 한 잔 마시기도 어려웠다. 뭔가를 쓰지 않으려면 뭐로 대체할지 찾아야 했고 대체가 안 되면 안 쓰는 쪽을 택했다. 저녁은 결국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깨끗이 씻어서 분리배출하면 잘 처리되겠지.’ 이제까지 그렇게 믿었다. 분리수거장에 나가보니 주변 다세대주택 앞에 플라스틱 용기가 잘 정돈돼 쌓여 있었다. 모두가 나처럼 ‘나는 잘하고 있다’라고 믿고 있었다.

◆왜 줄여야 하는가
플라스틱은 생산에서 폐기까지 모든 주기에서 탄소를 배출해 기후 위기를 초래한다. 플라스틱 수지의 대부분이 석유에서 얻을 수 있으며 운송되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세계는 1년에 약 450만 톤의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중 60% 이상이 곧 폐기물이 되는 일회용 제품이다. OECD에서 발간한 글로벌 플라스틱 아웃룩(Global Plastics Outlook)에 따르면 전세계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2060년에 약 10억 1000만 톤에 이른다. 플라스틱 폐기·소각·재활용·퇴비화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플라스틱은 자연 분해되지 않아 땅에 묻거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소각 시엔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이 배출되고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해돼 해양 생태계와 먹이사슬을 파괴한다. 이대로 간다면 기후 위기는 가속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미래를 본다면 아마도 역대급 폭염으로 신음하는 올해가 단연코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어느 누군가의 무서운 경고를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그래서 플라스틱을 피하며 살아봤는데 아예 쓰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작은 칫솔부터 빨대 하나까지 매 순간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배제는 불가능했지만 조금 덜 쓰는 건 가능했다. 플라스틱은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고 그걸 피하는 일은 익숙함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계산대 앞에서 잠시 멈췄고 물건 하나를 고를 때도 고민하게 됐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공급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소비를 줄이는 일이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대체재를 찾을 수 있다. 플라스틱 칫솔이나 빗이 아닌 나무 칫솔과 빗 같은 것들 말이다. 기후위기·환경재앙의 시계를 멈춰 지속가능한 세상을 물려주려면 지금부터 훈련이 필요하다. 이 훈련은 조만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세계 각국 정부는 플라스틱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론들을 지속적으로 찾아내고 그것이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뒷받침 해야 한다. 플라스틱 협약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정근우 수습기자 gnu@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