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띄우는 편지
해방의 환호·분단 상처 물든 80년
반복된 친일·독재 역사 덜어내고
민주주의 가치 등 후퇴하지 않도록
광복의 역사적 의미·정신 이어야

▲ 사진=챗GPT 제작

사랑하는 대한민국에게. 너를 처음 만난 날 거리는 해방의 빛으로 가득했다. 1945년 8월 15일 종소리처럼 퍼진 환호와 울음이 뒤섞여 하늘을 울렸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분단이라는 단어가 지도를 갈랐고 전쟁은 갈라진 금을 피로 물들였다. 삶터는 폐허로 변했고 사람들은 하루를 버티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그때 알았다. 평화란 끝까지 선택하고 지켜내야 하는 것임을.

무너진 돌 위에 돌을 얹으며 너는 산업화를 선택했다. 폐허 위에 공장을 세웠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고 강바람 속에서도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속도는 길게 드리운 그림자를 남겼다. 도시의 불빛 뒤엔 농촌의 고독과 노동자의 피로가 짙고 길게 드리워졌다. 성장의 수치는 올랐지만 사람들의 숨결은 종종 잊혔다.

민주주의를 향한 길에는 돌부리가 많았다. 4월의 거리에서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5월의 광주에선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6월의 광장은 손에 손을 잡고 거대한 파도를 만들었다. 그 모든 순간은 하나의 문장을 남겼다. “민주주의는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다고 믿던 순간에도 역사는 다시 흔들렸다. 어떤 이들은 기억을 재단하려 했다.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다시 써 내려가려 했다.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덜어내고 항쟁과 저항의 기록을 희미하게 만들려는 시도 앞에서 너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누구의 기억으로 살아갈 것이냐고. 기억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과거 보존이 아닌, 미래의 방향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한 번은 부패와 독선 앞에서, 또 한 번은 권한을 남용한 통치자 앞에서 권력은 두 번 무너졌다. 두 명의 대통령이 헌법의 이름으로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 과정은 법정의 판결이었지만 시작은 광장이었다. 촛불이 모여 이뤄낸 결정이었다. 너는 그날 배웠다. 헌법이란 종이에만 쓰인 문장을 넘어 시민이 지켜내는 살아 있는 약속이라는 것을.

그러나 80년이 지난 지금도 너는 여전히 한 몸이 되지 못했다. 군사분계선은 지도를 가르고 철조망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남북의 화해는 몇 번의 악수로 시작했지만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서로의 하늘을 바라보며도 아직 우리는 함께 걸을 길을 만들지 못했다. 광복 80년이 된 지금도 너의 절반은 여전히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이 미완의 현실은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가장 오래된 숙제다.

시대는 너를 쉼 없이 흔들었다. 세계 금융위기로 일자리가 무너졌고 세월호의 바다에서는 아이들의 이름이 별이 돼 흩어졌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거리를 비우고 마스크 속 숨소리마저 조심스럽게 만들던 시간에는 이웃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이제 너는 광복 80년을 맞았다. 상처와 빛, 함성과 침묵, 그리고 분단의 한계가 모두 네 안에 있다. 앞으로의 길은 여전히 험하다. 그러나 나는 바란다. 너의 내일이 두려움보다 희망으로, 경계선보다 다리로, 기념일보다 일상으로 가득하길 말이다. 광복은 80년 전의 기억이자 우리가 매일 새롭게 선택하고 이어 가야 할 약속이다. 그 약속을 지킬 힘이 너에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광복 80년을 마주하는 한 사람으로부터.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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