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성 전 둔산여고 교장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내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님들이 우리를 얼마나 애절한 사랑으로 키워주셨는지를 느낄 때마다 부모님에 대한 연민은 커지지만 이미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서 아쉬움만 남기며 후회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더 많이 갖고 사는 것 같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어머니 앞에서는 나의 부끄러운 모든 것, 나의 아픔과 슬픔을 모두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부등켜 안고 함께 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세월이 흘러도 늘 생각하게 되고 그리워하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해서 집을 떠나 계셨고 어머니와 나는 둘이서 지금 말하면 쪽방촌에서 살고 있었다. 부엌을 통해서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는 집이다. 그리고 같은 모양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옆집에서 무엇을 먹는지도 다 알 수 있었다. 팔월 초 어느 날 오전 방에서 방학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잠깐 어디를 같이 가자고 하시면서 나를 불러내어 함께 시장 쪽으로 갔다. 한 청과 가게에 들러 참외 두 개를 사서 내가 다니지 않는 인근 초등학교로 가자고 하셨다. 그리고 운동장 가에 있는 수양 버드나무 그늘에서 준비해온 과도로 참외를 깍아 주시면서 먹으라고 했다. 그 당시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어머니도 함께 우셨다. 그 어려운 살림에서도 자식에게 제철 과일을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지금도 나를 울리고 있다.
지금 산내 부근에 ‘알바우’라고 불리는 대전천 상류에 물놀이터가 있었다. 집에서부터 3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여름방학 때, 가끔 그곳으로 멱감으러 다녔다. 어느 날 어머니가 출타 중에 친구들과 ‘알바우’를 가서 멱을 감고 있는데 여름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너무 많이 내려서 천이 넘치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비를 피해서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가 저녁 나절이 되어서 비가 그쳐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동네가 난리가 나 있었다. “아이들이 멱감으러 가서 잘못된 것 아니냐”고 하면서 놀라 있었다. 어머니는 방에 들어오셔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셨다. 놀란 가슴에 화가 많이 나셨는지 평소에 잘못했을 때보다 훨씬 많이 때리셨다. 그리고 저녁을 먹는데 맞은 곳이 쓰라려서 보니 피가 난 곳도 있고 피멍이 들어 있었다. 내가 잘못해서 맞은 일이니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다. 자면서도 맞은 곳이 쓰라려서 잠이 깨었다. 그때, 어머니가 내 맞은 상처를 어머니 손으로 만지시면서 울고 계셨다. 나는 자는 척하고 있으면서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과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 온다.
지금도 팔월에 참외를 보면 그 당시 바람에 춤추던 수양 버드나무 모습이 떠오르며 고운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참외 조각조각을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어머니 손은 참 고우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명성아, 누구에게도 참외 먹었다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하시던 모습이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그때는 아이들이 특별한 것을 먹으면 동네에 나와서 자랑하고 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참 못살던 때 이야기이다. 그러나 깊은 정과 사랑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저에게 대단히 엄격하셨다. 가끔 잘못했을 때,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곤 했다. 맞는 것이 싫고 어머니가 미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잘못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맞는 것을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가끔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매를 맞을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도리와 윤리에 관계되는 부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어머니는 나에게 강요하고 가르친 것이었다. 어머니의 그런 가르침이 지금 나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 자식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어머니가 나에게 베풀어 주신 것에 십 분의 일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식에게 올바른 도리와 살아가는 정을 느낄 수 있고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칠십이 넘은 우리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자문해보자. 당신은 정말 어른 노릇을 하고 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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