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절차적 정당성 부족’ 이유로 신중론 확산
대전·충남교육계 “교육자치 훼손 … 원점 재검토”
대통령·지방시대위도 속도보다 절차와 협력 강조

▲ 대전·충남행정통합민관협의체가 지난달 대전시청에서 이장우 대전시장(오른쪽 세 번째)과 김태흠 충남지사(왼쪽 세번째),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왼쪽 두 번째),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오른쪽 두 번째)에게 ‘(가칭) 대전충남특별시 설치 및 경제과학수도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대전충남행정통합법안)을 전달하고 있다. 대전시 제공

<속보>=대전시와 충남도가 35년 만의 재통합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절차적 정당성 부족에 대한 문제제기와 교육자치 훼손 논란이 거세지면서 기로에 섰다. <본보 7월 28일자 6면 등 보도>

지난해 11월 두 시·도와 시·도의회가 통합 지방자치단체 출범을 선언한 뒤 민관협의체가 꾸려지며 행정통합 작업이 본격화됐다. 지난달엔 296개 조문으로 된 특별법안이 확정됐고 두 시·도의회도 찬성했다. 이제 남은 건 법안의 국회 통과인데 두 시·도는 오는 12월을 목표로 잡았다.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분명하다. 수도권 집중에 대응할 초광역 경제권 구축이다. 통합이 성사되면 인구 360만 명, 지역내총생산 190조 원 규모의 경제권이 만들어지고 대전의 연구개발 역량과 충남의 제조업 기반을 결합해 산업적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복 행정을 줄여 광역 교통망과 공공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구축하고 향후 10년간 5조 원 이상의 국비 확보도 기대된다는 게 두 시·도의 설명이다. 시 관계자는 “현재도 공식·비공식적으로 공론화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법안이 발의된 만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의견 수렴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법률 제정 과정 자체가 공론화 절차이니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두 시·도의 논리와는 달리 정치권에서는 신중론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정현 대전시당위원장은 “주민 공감대 없는 통합은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했고 같은 당 이재관 의원(충남 천안을)은 “충청권 4개 시·도가 참여한 광역연합이 이미 출범했는데 대전과 충남만 따로 통합하는 방식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세종시와 충북도를 배제한 선(先) 통합이 균형발전의 대의와 충돌한다는 문제 제기다.

실제 세종과 충북의 태도는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최민호 세종시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세종은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이기 때문에 대전·충남 통합에 처음부터 참여할 생각이 없다. 충청권 주민들이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염원으로 만든 도시가 세종인데 대전·충남과 행정통합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러나 지난해 말 출범한 충청광역연합은 통합 여부와 관계없이 필요하다”라며 협력 필요성은 인정했다. 세종이 통합 논의에 거리를 두는 배경에는 도시의 정체성 자체가 ‘특수목적형’이라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된 세종은 헌법 개정이나 법률 제정을 통한 행정수도 완성 과제가 최우선 목표다. 이 때문에 특정 광역자치단체와의 행정통합은 정체성과 충돌할 수 있다는 인식이 크다. 행정통합보다는 국가적 위상 확보와 중앙행정 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한발 떨어져 있는 것이다.

충북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입장이 조금 다르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지난해 말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대승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신중한 기류가 강하다. 충북은 충청권 4개 시·도가 함께하는 광역연합을 통해 연계 발전을 중시하고 있는데 대전·충남만의 단독 통합은 자칫 충북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런 배경으로 충북의 합류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결국 세종과 충북의 배제는 충청권 전체 통합 논의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세종은 행정수도라는 특수성을, 충북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대전·충남 중심의 통합 구상이 충청권 전체를 아우르는 균형발전 전략과 괴리를 빚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기에다 당사자인 내부에서마저도 반발이 뚜렷해지고 있는 점은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두 시·도 모두에게 부담거리다. 특히 교육계의 날선 반응이 그렇다. 특별법안에는 교육감 선출 방식을 직선제 외에도 간선제·러닝메이트제로 바꿀 수 있는 조항, 통합시장에게 교육청 감사권을 부여하는 내용까지 담겼다. 이에 대해 대전·충남교사노조와 교육청 공무원노조는 “교육계 의견이 배제됐다”며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통합 논의가 단순히 행정체제 개편을 넘어 교육자치의 근간까지 흔들 수 있다는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치권과 교육계의 반발이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 역시 속도보다는 절차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지난달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이장우 대전시장이 통합 추진에 대한 관심을 요청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세종과 충북을 제외한 이유와 지역민들의 이견 여부를 먼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공감 없이는 추진 동력이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도 지난 19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행정통합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다. 충청권 전체가 공유할 교통·산업·의료 인프라 같은 초광역 협력이 먼저”라고 밝혔다. 대전·충남 단독 통합이 자칫 권역별 협력 모델과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 갈린다. 행정통합 논의가 속도와 공론화 사이의 긴장 속에 놓여 있다는 진단은 일치하는데 속도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견해와 충분한 절차적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호택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5극 3특 구상과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같은 흐름에 있으며 궁극적으로 행정통합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론화 부진이 계속된다면 주민투표를 통해 다수의 뜻을 묻는 방식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권선필 목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효과와 실행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절차적 정당성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실질적 협력 모델 없이 정치적 수사만 앞세운다면 주민 공감대 형성은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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