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자는 늘고 사망자 수도 그대로
무죄판결 비율 높고 대부분이 집행유예
법인에 대한 벌금도 영국의 1/10 수준
기업, 예방보다 처벌 피하는데 더 노력
법 보완, 수사역량 높여 제대로 처벌해야
노사 공동 예방체계 구축 지원도 필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법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감만 커지고 있다. 이 법의 입법목적인 산업재해 예방 측면에서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고 법 규정이 미흡한데다 집행의 칼날도 무뎌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니 기업들은 여전히 산재 예방에 대한 투자보단 사고 수습(처벌 약화)에 골몰하는 경향을 보인다. 법 규정을 정비해 사고예방에 투자하지 않은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고 이와 함께 기업이 노동자와 함께 자율 안전예방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법적 실효성 논란의 이유
28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재해자 수는 법 시행 전인 2020년 10만 8379명, 2021년 12만 2713명, 법 시행 후인 2022년 13만 348명, 2023년 13만 6796명, 2024년 14만 2771명 등 매년 늘었다. 산재 사망자의 경우 같은 기간 2062명, 2080명, 2223명, 2016명, 2098명 등 매년 2000명을 웃도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중처법 입법으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 대한 의무가 강화됐지만 산재 억제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거다. 또 사업장 규모에 상관없이 재해자 수가 증가했고 사망자 수엔 변화가 없다. 법 시행과 함께 적용대상이었던 50인 이상 사업장의 재해자 수는 법 시행 직전인 2021년 3만 3537명에서 이듬해부터 3만 9226명, 4만 1802명, 4만 4591명으로 증가했고 사망자 수는 2021년 721명에서 이듬해 851명으로 급증한 뒤 2023년 775명, 2024년 799명을 기록했다. 2024년부터 적용대상에 포함된 5인 이상 49인 이하 사업장 역시 똑같은 패턴을 보였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대상이 아니다.

◆허술한 법, 집행의 무딘 칼
중처법상 산재 예방의 핵심 수단인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유명무실한 수준이다. 법 시행 이후 지난 7월 24일까지 보고된 중대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2986건인데 이 중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가 의심돼 수사한 건 1252건이고 이 가운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건 276건이다. 검찰은 이 중 121건을 기소했고 1심 판결이 나온 건 53건(2025년 7월 31일 기준)이다. 대부분 항소심이 진행 중이고 2심 판결이 나온 건 15건, 대법원에서 최종심이 확정된 건 1건이다. 53건(56명) 중 유죄가 확정된 건 49건(50명)인데 실형이 선고된 건 5건(5명)이다. 무죄는 4건(6명)으로 무죄판결 비율이 10.7%인데 형사공판사건 무죄판결 비율(3.1%)보다 3배 이상 높다. 1심판결이 나온 53건 중 대형 로펌(매출액 상위 10위)이 수임한 사건은 17건인데 무죄 판결 4건 중 3건이 대형 로펌을 선임한 사건이다. 통계적인 의미는 없지만 대형 로펌을 선임하면 무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엔 충분한 수준이다.

징역형이 선고된 47건의 형량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 평균 1년 1개월이다. 이는 중처법이 정한 하한선(1년 이상)에 근접하거나 이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치사 기본형량인 1년∼2년 6개월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결정되고 있다. 게다가 절대다수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유죄 판결 49건 중 42건(85.7%)이 집행유예다. 형사공판사건 집행유예 비율(36.5%)보다 배 이상 많다. 법명에 ‘처벌’이 포함돼있는 법률 위반 사건의 평균 집행유예 비율(40.3%)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사업주 개인에 대한 벌금형은 2건이고 평균 벌금액은 3333만 원이다. 법인에 대해서도 벌금형이 선고(49건·50개 법인)됐는데 20억 원이 선고된 1건을 포함해 평균 벌금액이 1억 1140만 원이다. 최고액 선고 1건을 제외하면 평균 7200만 원 수준이다. 영국(2008∼2019년 23건, 평균 7억 6816억 원)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모티브로 도입된 우리 중처법의 입법 취지가 기업으로 하여금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사고예방을 위한 투자비용을 압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 기업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투자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입법조사처는 평가했다.

입법조사처는 조사-송치-기소-재판 과정에서 수사 지연과 처리기간 장기화도 확인했다. 입법조사처가 지병이나 교통사고 등을 제외하고 고용노동부가 수사 대상에 올린 1252건 중 73.2%(917건)가 고용노동부와 검찰에서 수사 중이다. 또 고용노동부 수사단계에서 6개월을 초과해 처리된 사건 비율은 50%인데 이는 다른 형법·특별법 범죄(10.3∼14.6%), 노동 관련 범죄(9∼35.5%)와 비교해 현저히 높은 비율이다. 검찰 수사단계에서 10일 이내 처리된 건 0%이고 3개월 이내 처리 비율은 5%, 6개월 내 처리 비율은 30%, 6개월 초과 비율은 56.8%다. 범죄 구성 요건에 따른 이중적 입증 책임과 어렵고 복잡한 법적 쟁점, 산업안전보건근로감독관의 양적·질적 문제, 수사기관의 법 집행 의지·능력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법이 제역할 하도록 하려면…
입법조사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선 법령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비하고 근로감독관을 질적·양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실효성 있는 경제적 제재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우선 많은 전문가들이 법 제4조 제1항 제 1호와 시행령 제4조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조치 규정의 불명확성을 지적한다. 입법조사처는 수사 지연과 처리기간 장기화, 높은 무죄율, 높은 집행유예율, 낮은 유죄형량 등의 패턴이 이 같은 법규의 불명확성 때문에 발생한다는 거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조치, 면책요건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제시와 작업자 실수 예방조치 추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적용할 별도 조치 규정, 재정지원 및 민간 지원기구 설치 근거 마련 등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근로감독관의 역할 강화도 절실하다. 법 위반 사건에 대한 수사 지연과 처리기간 장기화, 높은 무죄율 등의 문제는 산업안전보건근로감독관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이들의 전문성 강화는 물론 사건처리절차 표준화, 신속한 증거 확보를 위한 법적·기술적 지침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입법조사처는 조언했다. 또 현재 논의 중인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중대재해 범죄 수사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입법조사처는 부연했다. 조속한 사건 처리를 위한 경찰·경찰·고용노동부 합동수사단 설치 등 보다 적극적인 조치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입법조사처는 부연했다.

무엇보다 실효적 제재 방안이 급선무다. 현행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은 중대재해 피해자와 가해자 간 합의금 수준을 높이고 신속한 합의를 유도함으로써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약화되게 만드는, 당초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도 드러내고 있다. 가해자가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한 투자보다 중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 측과 처벌불원서 등 합의를 시도하는 데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법이 무력화되고 산재예방효과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법인 양벌 규정에 따른 벌금 역시 법정형과 현실 간 뚜렷한 괴리가 존재한다. 기업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라 궁극적으로 산재사고 예방에 대한 중요성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입법조사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한 법적 문제가 아니라 산재를 줄이기 위해 안전에 투자하는 비용과 시간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문제인 만큼 법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반복적이거나 중대한 산재를 발생시킨 기업에 실효성있는 경제적 불이익을 부과하는 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 규모별 매출액·이익 연동 벌금제 및 재산비례 벌금제, 사고 이력 가중 벌금제, 이익환수형 과징금제, 산재보험 차등 보험료율 적용 등을 제안했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방송 생중계를 한 국무회의에서 “안전을 포기해 아낀 비용보다 사고 발생 시 지출하는 대가가 더 커야 한다”, “산재가 거듭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은 회생이 어려울 만큼 엄벌과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입법조사처는 책임자 처벌이라는 수단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과 함께 이 처벌 수단이 안전보건경영체계,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 등과 조화를 이루도록 제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산재를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해선 사업장별 특성에 맞는 안전보건경영체계를 구축하고 노사가 실질적으로 참여해 위험성평가를 수행하는 한편 여기서 도출된 위험요소에 적합한 대응수단을 강구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갖추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자발적 자율성을 벌칙 규정이 아닌 시장 논리에 따라 확보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험성평가 성실기업 산재보험료율 및 세액공제 혜택 부여, 정부 발주 공사 또는 공공구매 시 가점 부여, 평가 미실시 및 부실 기업에 대한 과징금·과태료, 민사상 배상책임 가중제 적용 등을 제안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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