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금강일보DB

<속보>=일제가 남긴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朝鮮人要視察人略名簿)’라는 검은 기록이 있다. 낡은 종이 위에 빼곡히 적힌 이름들은 단순한 명단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묶어두고 숨결 하나까지 뒤쫓으려 했던 집요한 감시의 흔적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 5개 도(道)의 약명부 뿐이다. 충청권에서는 충남 129명의 이름만 확인된다. 그 명단 속에는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 노동운동가뿐만 아니라 일본인과 외국인, 심지어 사상 전향자와 밀정까지 뒤섞여 있다. 일제는 조금이라도 통치에 저항하거나 전쟁 수행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그 이름을 올려놨다. 그들에게 약명부는 족쇄였고 우리에게는 지금도 남아 있는 치욕의 흔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약명부는 끝내 굴복하지 않은 삶의 증거이기도 하다. 경술국치 115년, 그 문서 속 이름을 다시 불러내며 일제의 눈길조차 꺾지 못했던 항일의 시간을 되짚는다. <본보 2023년 3월 13일자 3면 보도>

 

일제 통치 저항인물 적힌 약명부

충남서 활동가 129명 확인됐지만

민 씨 父子 이름 나란히 등장해도

아버지는 서훈·아들은 명단에만

 

민족문제硏 포상 신청 추진나서

충남은 전북 선별 후 순차적 진행

역사 잊히기 전에 서훈 완성되길

충남 약명부에 남은 129명의 이름 가운데 아산 신화리 371번지라는 주소가 남아 있다. 낡은 문서 속 주소 옆에 한 남자의 이름이 있다. 바로 아래 372번지에는 또 다른 이름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한경석·한만석에 대한 내용이다. 형제였을까, 사촌이었을까. 그 집들이 마주 보고 서 있었을 골목 어귀를 떠올리면 마을을 감싼 정적 속에 드리운 긴장과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일제는 그 평범한 농가의 대문까지 감시망으로 엮어 놨다. 이름과 기록은 곧 사람들의 삶과 눈물, 굴하지 않은 저항의 시간을 증언한다.

예산 출신 박헌영은 더 선명하다.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화요회계 공산주의자, 러시아와 상하이에서 활약,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6년, 집요한 투쟁 경력.’ 단 몇 줄의 기록이지만 그 짧은 문장 속에 청춘을 감옥에 던지고도 굴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 소재를 찾지 못한 일제는 그의 본적지에서조차 이름을 지우지 않고 감시망에 올려뒀다. 잊지 않고 끝까지 두려워했던 것이다.

1930년대 아나키스트 이윤희의 이름도 약명부에 남아 있다. 해방 불과 다섯 달 전 1945년 3월 일제는 그가 국내로 돌아온 사실을 적어 넣었다. 패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순간에도 저항자를 추적하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문서 속 짧은 기록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유를 향해 몸부림친 인간의 의지를 또렷하게 증명한다.

무엇보다 가장 극적인 기록이 있다. 부자(父子)의 이름이 나란히 등장하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 1942년 순국한 민병길과 그의 아들 민성기가 그들이다. 아버지는 애국장으로 서훈됐지만 아들은 아직도 인정받지 못했다. 문서에 남은 기록은 냉정하다.

‘1945년 3월, 중국 중경에서 비행사로 활동 중.’

​사진=챗GPT 제작
​사진=챗GPT 제작

조국의 하늘을 지키기 위해 날아오른 아들의 비행은 아직 국가로부터 불려지지 못한 채 종이 위에 갇혀 있다. 부자가 함께 감시 대상에 오른 사실은 일제가 얼마나 집요하게 저항자를 두려워했는지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미완의 역사라는 부끄러운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29일은 경술국치 115주년이다. 국권을 빼앗긴 치욕의 날이다. 그러나 그 치욕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수많은 이름들이 약명부 속에서 되살아난다. 5개 도 전체 약명부에 수록된 790명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이는 168명뿐이다. 나머지 수백 명은 여전히 문서 속에 잠들어 있다. 그들을 해방시킬 열쇠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 때문에 약명부에 오른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와 국가적 예우가 가능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23년 약명부를 번역·분석해 공개한 뒤 체계적인 발굴 작업에 나선 후 첫 포상 신청에 나서면서다. 연구소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전남지역 인물 중 37명을 선별, 국가보훈부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친일 행적이 있거나 해방 이후 논란이 될 수 있는 인물은 철저히 배제했고 항일 행적이 뚜렷하면서도 아직 서훈되지 못한 인물을 엄정한 검증을 거쳐 발굴했다. 연구소는 연말까지 전북지역 조사를 마무리한 뒤 충남지역 인물 검증에도 착수할 방침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현재는 전남지역 37명을 대상으로 1차 포상 신청을 마쳤고 연말까지 전북지역을 조사할 계획이다. 충남도 129명이 확인돼 규모와 상징성이 큰 만큼 독립운동 사실이 분명하지만 아직 서훈되지 못한 분들에 대한 포상을 반드시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명부는 끝내 무너지지 않은 사람의 흔적이며 동시에 일제가 그들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경술국치 115년, 역사는 과거로만 남지 않는다. 잊힌 이름을 불러내고 미완의 서훈을 완성하며 치욕의 날을 저항과 회복의 역사로 다시 세우는 것이 오늘 우리가 짊어진 책무다. 371번지와 372번지, 잊힌 이름들, 부자의 서글픈 대비, 아직 불리지 못한 젊은 독립운동가들의 삶 모두가 오늘의 우리에게 다그치듯 묻는다. 우리를 잊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불러낼 것인가.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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