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평균 228일→120일 단축
근골격계질병, 특별진찰 생략하고
반도체백혈병 역학조사 없이 승인

정부가 업무상 질병에 대한 산재 처리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기준 평균 227.7일, 약 7개월 걸리던 업무상 질병 산재 처리기간을 2027년까지 120일 수준으로 낮추는 안을 담은 ‘업무상 질병 산재 처리기간 단축방안’ 발표했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가 이를 신속추진과제로 제안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 산재 결정이 비교적 신속하게 처리(평균 약 17일)되는 것과 달리 업무상 질병의 경우 길게는 4년까지 소요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게 정부의 의지다.
정부는 우선 업무와 질병 간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 특별진찰을 거치지 않고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통해 신속하게 산재를 처리한다. 전체 업무상 질병의 51%를 차지하는 근골격계 질병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내장인테리어목공, 환경미화원, 중량물배달원, 철근·배관공, 용접공, 타일공, 급식조리원, 보육교사, 요양보호사(재가), 자동차정비공 등 근골격계 질병이 다수 발병해 업무와 질병 간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다수의 사례가 축적된 32개 직종이 대상이다. 이들은 근골격계 질병에 대해 특별진찰을 받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의 재해조사를 거쳐 판정위원회에서 업무관련성을 심의받는다. 정부는 향후 시스템비계공, 방수공 등 현장에서 제안된 직종에 대해서도 노사·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대상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 특별진찰에 추가로 걸리는 기간은 평균 166.3일인데 특별진찰을 받지 않는 경우 처리기간이 크게 단축된다.
역학조사도 축적된 자료가 충분해 업무상 질병과 유해물질 간 상당한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 절차를 생략한다. 광업 종사자의 원발성 폐암, 반도체 제조업 종사자의 백혈병, 단체급식 조리종사자의 조리흄 노출로 인한 폐암과 같이 유해물질과 질병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뤄져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역학조사는 질병 원인이 분명한 경우 연구기관에서 유해요인, 노출정도 등을 분석해 업무 관련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인데 여기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604.4일에 달한다. 탄광 노동자 A 씨는 작업 중 노출된 유해물질과 폐암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확인하는데 974일의 시간이 소요됐고 반도체 제조업공장 웨이퍼 가공 업무에 종사한 B 씨가 백혈병에 걸려 산재를 신청한 사례에서도 작업 공정에서 발생한 벤젠 등 발암물질과 백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확인하는데 1503일이 걸렸다. 역학조사가 생략되면 조해조사를 거쳐 60일 내 산재 인정이 가능하다.
정부는 이와 함께 특별진찰 실시 결과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이미 확인된 경우 판정위원회에서 재차 업무 관련성 심의를 하지 않기로 했다. 또 추정이 적용되는 경우 산재노동자의 업무관련성 입증 부담을 낮춘다. 근골결계 질병, 뇌심혈관계 질병, 정신질병 중 유해요인 노출 수준, 근무기간 등의 일정 기준을 충족해 업무관련성이 강하다고 인정되면 특별진찰·역학조사·판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공단의 재해조사를 통해 신속하게 산재 처리를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아울러 재해조사 기능 강화를 위해 공단에 업무상 질병 전담조직을 구축하고 이들의 전문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올 연말까지 집중처리기간을 운영, 장기 미처리 사건을 중점 처리한다. 이와 함께 산재 신청부터 산재 불승인에 대한 이의제기까지 재해 노동자에게 무료로 법률 서비스를 지원하는 국선대리인제도를 내년까지 도입한다. 업무상 질병 관련 행정소송 판례를 분석, 질병별 반복 패소 원인을 진단·유형화하고 패소율이 높은 질병에 대해선 인정기준을 재정비·합리화 할 방침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장관은 “그간 산재 신청 후 아픈 몸으로 길게는 수년까지 기다려야 했던 노동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권리를 신속하게 보장하겠다. 산재보험이 ‘신속하고 공정한 산재보상’이라는 제도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