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운영 전례없는 속도전 기록
소비쿠폰 등 내수부양 정책 효과
특검·검찰개혁도 속전속결 추진
한·미·일 협력관계 다지기 물꼬
국무회의 생중계 등 소통 늘려

재정 건전성 위기·인사 검증 논란
교착된 관세 협상·동맹관리 등
분야별 산적한 과제 만만치 않아

사진= 이재명 공식 SNS
사진= 이재명 공식 SNS

이재명 대통령이 11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이라는 헌정의 격변 속에서 조기 대선으로 선출된 이 대통령은 6·3 조기대선 이튿날인 6월 4일부터 곧장 국정 운영에 착수했다. ‘회복과 성장’을 국정 기조로 내세운 새 정부는 민생·경제 회복, 권력기관 개혁, 외교·안보 현안, 새로운 소통 방식을 동시에 밀어붙이며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다. 그 결과 100일은 성과와 논란이 교차한 전례 없는 속도의 시간으로 기록됐지만 재정 건전성·개혁 연착륙·동맹 관리 등 풀어야 할 과제 역시 분명해졌다.

◆민생경제 : 소비 회복, 빚은 부담

정부는 취임 직후 비상경제점검TF를 출범시키며 민생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 7월 지급된 전 국민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지역화폐 확대, 숙박·문화 쿠폰은 소비심리를 자극했고 소비자심리지수는 다섯 달 연속 올랐다. 코스피가 3000선을 돌파하는 등 금융시장도 반응하면서 경기 회복 기대가 확산됐다. 내년도 예산안은 728조 원 규모로 편성됐으며 인공지능(AI) 대전환과 초혁신경제 투자를 앞세워 잠재성장률 3% 회복을 목표로 했다. 정부는 “성과가 나는 분야에 투자해 세수 기반을 넓히고 재정 건전성을 복원하겠다”라는 선순환 구조를 내세웠다. 그러나 국가채무는 올해 1300조 원을 넘어 내년 1415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GDP 대비 채무비율도 내년 50%를 돌파해 2029년에는 58%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세입보다 지출 증가 속도가 빨라 국채 발행 확대가 불가피한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내수 반등이 확인되더라도 확장재정이 지속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금융 불안으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시적 부양이 장기적 성장 동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첫 100일의 성과는 반짝 효과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개혁 : 속도와 부작용

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3대 특검법을 처리하며 권력기관 개혁의 신호탄을 올렸다. 수사·기소 분리를 축으로 한 검찰청 해체,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등 조직개편안도 신속히 확정됐다. 상법·방송 3법·노란봉투법 등 굵직한 입법 과제도 연이어 추진됐다. 더불어민주당의 절대 다수 의석, 범여권 세력의 지원이 힘이 되면서 개혁 입법은 이례적인 속도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중요 쟁점은 국민 앞에서 토론하라”라며 신속한 처리 속에서도 세밀한 개혁을 당부했지만 대통령실은 신중론을, 여당은 가속론을 내세우는 장면이 거듭 나타났다. 인사에서는 상징성과 논란이 함께했다. 민간인 국방장관과 민주노총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 발탁은 파격으로 평가됐으나 민정수석 사퇴와 장관 후보 낙마는 검증 체계의 허술함을 노출했다. 인사 메시지가 개혁의 신뢰로 이어지려면 사전 검증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향후 개혁의 성패는 제도 운영 과정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소 분리로 인한 혼선 최소화, 새 법제의 집행 기준 마련, 인사 신뢰 회복이 병행되지 않으면 개혁 드라이브는 동력을 잃을 수 있어서다.

사진=챗GPT 제작
사진=챗GPT 제작

◆외교안보 : 최악은 피했지만

정부는 한·미 상호관세율 25% 부과 위기를 15% 합의로 조율하며 첫 외교 시험대를 넘었다. 지난달 말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돌발 상황 없이 마무리됐고 직전의 한·일정상회담으로 셔틀외교 복원도 알렸다. 국제무대에서 실용외교 원칙을 부각하며 초기 불확실성을 관리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관세 세부 협상은 교착 상태다. 자동차 업계는 25% 관세 부담을 떠안고 있으며 주한미군 전략 유연성 문제 같은 안보 현안도 남아 있다. 조지아 배터리 공장 한국인 구금 사태는 한미 경제협력이 미국 내 정치 논리에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는 가운데 한반도 정세 관리 역시 쉽지 않다. 이 대통령은 북·미 대화 재개를 제안하며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지만 북한의 호응은 미온적이다. 복잡한 대외 환경 속에서 외교는 성과 고정보다 불확실성 완화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치권은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주목한다. 한·미, 한·미·일 협력 틀을 공고히 하면서도 중국과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 이 대통령의 외교 기조가 검증대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소통정치 : 공개와 관리 사이

이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회의를 생중계하는 한편 전국을 돌면서 타운홀 미팅을 개최했다. 전례 없는 공개 행보로 보이는 국정 이미지를 강화하며 국민 참여와 투명성을 부각했다. 현안 토론이 길어져 도시락 회의가 이어질 정도로 자유로운 국무회의는 과거와 달리 정책 논의의 장으로 변모했다. 대통령실 구내식당이나 인근 카페에서 기자들과 격식 없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자주 공개됐다. 소탈한 이미지와 직접 소통 행보는 이 대통령 개인의 성향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지나친 공개가 부작용을 낳은 사례도 있었다. 비공개 일정이 드러나거나 당국자의 발언이 과장되면서 불필요한 논란이 불거졌다. 여당의 속도전과 대통령실의 신중론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메시지 관리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소통은 국정 동력을 끌어올리는 자산이 될 수 있지만 성과로 연결되지 못하면 곧 피로감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이 대통령이 얻은 국민적 호응을 실제 정책 성과로 환류시키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재명정부 100일은 속도와 과감함으로 균열을 뚫었지만 다음 100일은 경제는 재정과 성장의 균형, 개혁은 제도 운영의 세밀화, 외교는 실익의 제도화, 소통은 성과 환류 장치 마련 등 정밀함과 지속성이 요구된다는 게 중론이다. 오는 APEC 정상회의와 조직개편 후속 계획은 이재명정부가 성과를 구조로 고정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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