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규명 “흥정대상 아냐” 선 긋고
부동산 투기 억제 단호하게 밝혀
교육 개혁 등 구체성 없어 아쉬워

사진= 이재명 공식 SNS
사진= 이재명 공식 SNS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은 협치와 개혁, 확장 재정과 균형발전이라는 두 축으로 요약된다. 헌정 질서와 국민 안전 등 타협할 수 없는 선은 분명히 하면서도 나머지 영역은 제도와 실용으로 풀겠다는 방향성을 엿보였다. 동시에 부동산 투기와 결별하고 과감한 재정투자, 금융시장 정상화, 수도권 분산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비전도 내놨다. 다만 청년·무주택자 대책, 교육 개혁 세부안, 외교 구상 같은 민생·실행 전략은 부족해 원칙과 청사진은 있으나 구체성이 아쉽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정치 : 협치의 선과 검찰개혁

이 대통령은 협치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의 본질과 연결된 문제에는 타협 불가 원칙을 확고히 했다. 이 대통령의 “정책은 정치적 협의가 가능하지만 민주공화국의 본질은 맞바꿀 수 없다. 협치는 야합이 아니다”라는 발언은 그 경계선을 뚜렷이 그은 것이다. 특히 내란 특검을 두고 이 대통령은 “내란의 진실을 규명하고 다시는 쿠데타가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며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님을 못박았다. 협치의 문은 열어두되 내란과 같은 헌정 질서 의제는 선을 긋는 방식이다.

검찰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향방을 구체화했다. 이 대통령은 “나는 검찰개혁의 가장 큰 피해자다. 그러나 감정이 아니라 논리와 제도로 풀어야 한다. 수사와 기소는 분리됐으니 이제는 왜곡되지 않게 1년 안에 치밀한 장치를 설계해야 한다”라고 언급, 검찰청 폐지 논의와 맞물려 제도 존치 여부가 아니라 설계의 완결성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권한 남용을 막고 피해자 보호를 담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메시지다.

외교에서는 실용주의가 두드러졌다.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해 이 대통령은 “우리가 얻으러 간 게 아니다. 미국의 일방적 증액을 최대한 방어하러 간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면합의는 없다’라는 원칙을 거듭 상기시켰다. 일본 정권 교체 국면에 관해서 이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는 외면하지 않되 미래 협력은 별도로 접근해야 한다”라며 투트랙 전략을 고수했다. 다만 최근 미국 내 단속으로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위축 가능성에 대해서는 진단에 그쳤고 보완책은 제시하지 못한 점은 한계로 평가된다. 국제연합(UN) 무대에서는 “인공지능(AI) 국제규범 마련에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라는 구상을 내놨지만 세부 초안은 공개하지 않았다.

◆경제 : 투기 억제와 확장 투자

이 대통령의 부동산 투기 결별 의지는 단호했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으로 돈 벌 생각하지 마라. 이제 금융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라고 직설적으로 경고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전세 레버리지와 갭투기를 지목하며 수요 관리 강화를 예고했지만 청년과 무주택 실수요자를 겨냥한 단기 금융 지원책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연착륙 원칙 아래 시장 불안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정책 피로감이 누적된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관건이다.

재정 운용에서는 확장 기조가 분명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은 씨앗을 뿌려야 할 때”라며 국채 발행 부담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돈을 빌려서라도 씨앗을 사 뿌려서 가을에 그 이상의 소득을 올려야 한다는 거다. 또 전 정부의 장부 밖 부채를 문제를 짚으며 투명 집행을 공언했다. 이 대통령은 GDP 대비 부채 비율을 근거로 확장 재정을 정당화했지만 실제 투자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면 물가·금리 불안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은 여전한 숙제다.

금융시장 정상화 필요성도 부각했다. 이 대통령은 “멀쩡한 회사가 문 닫아도 자산가치가 주가보다 높은 현실은 비정상이다. 상법을 개정해 악덕 지배주주를 압박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한국 증시의 고질적 저평가, 저PBR 문제, 물적분할 남용 등 구조적 왜곡을 제도 개혁으로 풀겠다는 의지다. 다만 대주주 양도세 기준(50억→10억 원) 논란에 대해 이 대통령은 “시장 심리를 저해한다면 고집하지 않겠다”며 유연성을 드러냈다. 강경한 방향과 유연한 전술이 병행되는 실용적 접근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지방 살리기와 관련해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수도권 집중에서 비롯된다. 균형발전의 기회를 만들지 못하면 어려움에서 탈출하기 어렵다”라고 연결 지었다. 수도권 일극 구조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이 대통령은 “환경영향평가처럼 모든 정책에 균형발전 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지방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 세제·전기요금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사회 : 교육경쟁 완화·문화 산업화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교육 개혁에 대해 발언을 최소화하며 추상적 방향 언급에 머물렀다. 이 대통령은 “정시냐 수시냐는 본질이 아니다.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지 않으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하면서 입시제도의 세부 논란보다 경쟁 완화와 AI 기초교육 도입 같은 근본 과제 해결이 먼저라는 시각을 보였다. 교원 확충, 재정 배분, 지역 격차 해소 등 구조적 해법에 대해선 국가교육위원회 운영 정상화 과정 속에서 살펴보겠다고 했다.

안전 문제에서는 산재와 대형 참사를 직접 언급하며 국가 책임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조금만 신경 썼으면 막을 수 있는 사고가 너무 많다”라고 지적하면서 피해자 권리 보장과 국가 책무 강화를 선언했다. 이태원 참사와 최근 잇따르는 산업재해를 언급하며 제도적 보완을 통한 재발 방지 필요성을 환기한 것이다.

언론과 허위정보 규제는 표현의 자유와 규제의 균형에 맞춰졌다. 이 대통령은 “고의·악의가 있는 경우에만 엄격히 배상하게 하고 형사처벌보다 민사배상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언론중재법 대신 일반법적 접근을 염두에 둔 것인데 과잉 규제 논란을 피해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문화 영역에서는 산업화와 순수예술 지원을 이원화하는 구상을 내놨다. 이 대통령은 “정부의 산업 경제 정책의 핵심 중 하나가 문화 산업을 키우는 것이다. 대중문화교류위원장에 임명된 박진영 씨는 뛰어난 기획가로 문화의 산업화, 글로벌 진출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중문화의 세계화와 산업화를 전면에 세운 셈이다. 동시에 순수예술 지원은 별도의 체계에서 대폭 확대할 것을 약속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