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보험 개선·에스크로 검토
피해예방 제도 손질 나섰지만
정작 피해자 구제책은 쏙빠져
빚 탕감·채무 조정 병행 호소

▲ 사진=챗GPT 제작

<속보>=정부가 전세사기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전세사기 보증보험과 전세 에스크로 등 새로운 장치가 검토되고 있는데 피해자들에게는 예방은 강조하면서 구제에는 무심한 대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본보 7월 24일자 1면 등 보도>

국토교통부는 최근 ‘주택임대차 보증금 보호 방안 마련 연구’ 용역을 긴급 발주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용역기관으로 선정했다. 기간은 3개월로 단축했는데 이르면 연내에 제도 개선 방안이 발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에서 전세사기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정책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의 핵심은 현행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의 취약점을 짚고 새로운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반환보증이 사기 수법에 악용된다는 비판, 담보인정비율 90% 허용 구조 등이 주요 검토 대상이다. HUG는 지난해 전세가율을 80%로 낮추는 방안을 국회에 보고했지만 임차인 보호 축소 우려로 시행되지 못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HUG 보증의 지속가능성과 논란을 검토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새 제도로는 전세사기 보증보험이 우선 거론된다.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보증 가입 주체를 임차인에서 임대인으로 바꾸는 방안이다. 또 전세보증금을 제3의 기관에 예치하는 전세 에스크로 제도도 검토된다. 다만 임대 수요 감소, 수수료 전가, 전세의 월세화 가속 등 부작용 우려도 크다. 전세보증금 상한제 도입 여부도 관심이다. 여권은 여기에 더해 소액임차인 최우선변제권의 기준을 임대차 계약 시점으로 바꾸고 변제금 상향과 지역 기준 조정까지 추진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구체적인 구제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 피해자는 “사기 때문에 빚까지 떠안게 됐는데 신용불량자로 내몰리는 건 너무 억울하다. 채무 조정이나 탕감 같은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앞으로 계약할 사람들만 보호할 게 아니라 이미 피해 본 사람들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국가가 먼저 보증금을 돌려주고 이후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소송을 해야 하는데 변호사 비용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피해자가 많다. 그런 부분을 지원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 정부 대책의 맹점은 시기와 범위에 있기 때문이다. 새 장치는 대부분 앞으로 체결되는 계약에만 적용돼 이미 피해를 본 임차인들에게는 효력이 없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집을 비우고도 여전히 빚에 허덕이는 현실, 수개월째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을 이어가는 피해자들의 상황은 여전히 방치돼 있다. 지역의 한 법률 전문가는 “보호 장치가 강화돼도 피해자 구제와 병행되지 않으면 현장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정부가 현장 없는 탁상 대책에 머문다면 제도 개선도 공허한 선언에 그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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