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유튜브 '36주 차 낙태' 영상 캡처
사진 = 유튜브 '36주 차 낙태' 영상 캡처

서울 시내 한 산부인과에서 임신 36주차 산모에게 불법 낙태 시술을 시행하고 태아를 고의로 숨지게 한 혐의로 병원장과 집도의가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이들이 첫 공판에서 살인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지난 18일 살인 및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 윤모(80) 씨, 집도의 심모(61) 씨, 산모 권모(26) 씨, 브로커 2명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공판에서 윤 씨와 심 씨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밝혔다. 반면 산모 권 씨는 “낙태를 의뢰한 것은 사실이나 살인을 공모하지 않았고, 태아의 사망 경위도 알지 못한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의료법 위반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브로커 2명은 모두 혐의를 인정했다.

윤 씨와 심 씨는 작년 6월경, 임신 34~36주차였던 유튜버 권 씨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시행해 태아를 출산시킨 뒤, 미리 준비한 사각포로 감싸 냉동고에 넣는 방식으로 태아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윤 씨는 권 씨의 진료기록에 ‘출혈 및 복통’이 있었다고 허위 기재하고, 태아가 사산된 것처럼 조작했으며, 수술 사실이 알려진 뒤에는 허위 사산증명서를 발급해 범행을 은폐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대검찰청
사진=대검찰청

검찰 수사 결과, 윤 씨는 2022년 8월부터 병원 경영난을 이유로 산부인과 전체를 불법 낙태 전문시설로 전환한 것으로 확인됐다. 입원실 3개와 수술실 1개를 갖춘 이 병원은 낙태 시술을 원하는 환자만 받았으며, 윤 씨는 외부 브로커들과 연계해 환자를 모집했다. 심 씨는 시술 1건당 수십만 원을 받고 수술을 집도했다. 2년간 총 527명의 산모가 이 병원에서 불법 낙태 시술을 받았고, 윤 씨는 약 14억6000만 원의 수익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은 작년 6월, 피해 산모 권 씨가 유튜브에 ‘총 수술비용 900만 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논란이 확산되자 보건복지부는 해당 의료진을 경찰에 수사의뢰했고, 경찰은 같은 해 10월 병원장과 집도의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한 차례 기각됐다. 이후 낙태 시술 건수가 수백 건에 달하는 정황을 추가로 확인해 지난 6월 영장을 재신청했고, 법원은 “증거 인멸 우려”를 이유로 영장을 발부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임신 24주 이후 낙태는 불법이지만, 2019년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국회에서 관련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질적인 처벌 조항은 부재한 상태다. 정부는 최근 약물적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통과시켰지만, 임신 후기 낙태에 대한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판부는 피고인 대부분이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만큼, 다음달 13일 열리는 두 번째 공판기일에서 심리를 종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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