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법·행정 체계 대개편 시동
검찰 폐지 공소·중수청 체제 전환
기재부, 재경부와 예산처로 분리
환경부,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헌법 정합성 등 논란의 불씨 남아
후속 입법·에산 여야 공방 불가피

국회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한국 형사사법·행정 체계가 대수술에 들어갔다. 재석 180명 중 176명이 찬성한 이번 개편으로 검찰은 1년 유예 뒤 내년 9월 78년 만에 폐지되고 기소를 맡는 공소청(법무부)과 수사를 전담하는 중대범죄수사청(행정안전부)으로 나뉜다. 동시에 기획재정부는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되고 환경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된다. 다만 보완수사권 처리, 국가수사위원회 신설안, 헌법 정합성 등 쟁점이 남아 후속 입법·예산 전선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불가피하다.
◆檢 폐지…공소청·중수청으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80명 가운데 찬성 176표, 반대 1표, 기권 3표로 통과됐다. 반대표는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이 유일했고 조국혁신당 신장식·백선희·차규근 의원이 기권했다. 법안은 15일 발의돼 불과 11일 만에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졸속 심사를 이유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했으나 약 24시간 만에 종결됐고 종결 표결과 본회의 표결 모두에 불참했다. 첫 주자로 17시간 12분을 발언한 박수민 의원이 최장 기록을 다시 썼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핵심은 검찰의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다. 1948년 창설된 검찰은 법 공포 1년의 유예를 거쳐 2026년 9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기소와 공소유지를 전담하는 공소청이 법무부 소속으로 신설되고 중대범죄 수사를 맡는 중수청은 행안부 소속으로 출범한다. 이에 맞춰 법무부 장관의 사무 범위는 검찰에서 검사사무로 바뀌고 조직 설치 조문도 검찰청에서 공소청으로 대체된다.
관건은 유예 1년 동안의 정교한 설계와 연착륙이다. 정부는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제도개혁 TF를 가동해 공소청·중수청의 직제와 정원, 사건 이관·배당 원칙, 수사개시 범위를 확정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현재 검사 약 2300명, 수사·실무 인력 약 7800명 등 1만 명 안팎의 재배치가 뒤따르는 만큼 세부 규정·인력 배치·예산·정보 시스템을 한몸처럼 맞물리게 하는 실행 설계가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보완수사권 등 위헌 논란 불씨
큰 틀의 검찰 분리 구조는 확정됐지만 보완수사권 폐지 여부와 수사 관할 조정을 위한 국수위 신설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유예기간 최우선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보완수사권을 없애면 불송치·항고 사건에서 지휘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와 공소청의 보완요구권만으로도 실무상 충분하다는 반론이 맞선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수사·기소의 경계선과 책임 소재, 사후 통제 구조가 달라지게 된다.
헌법적 정합성도 시험대다. 헌법 제89조의 ‘검찰총장’ 명시를 근거로 검찰 폐지에 위헌 소지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헌법에 규정된 검찰을 지우는 것은 성공적인 검찰개혁에 오점이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조직 명칭과 지휘 체계 변경이 헌법·법체계와 충돌하는지 여부는 후속 입법과 법리 검토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개혁”vs“개악” 공방
표결 직후 정치권과 법조계의 반응은 정면으로 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를 “78년 만의 사법 권력 구조 대전환이다. 공소청·중수청 출범 일정에 맞춘 조직 설계와 예산 작업에 속도를 내겠다”라고 밝혔다. 특히 정청래 대표는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던 검찰개혁이 닻을 올렸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정부조직 개악법이다. 절차·내용 모두가 졸속”이라고 비판했다. 국힘은 장내·장외를 병행해 공소청법·중수청법 심사 과정에서도 강경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착잡한 반응이다. 노 직무대행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국회의 의결을 존중한다. 향후 형사사법 시스템이 공백 없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짧게 말했다.
◆재정 라인 분리·기후부 확대
사법 개편과 함께 경제·에너지·사회 분야의 구조 개편도 병행된다. 기재부는 내년 1월 2일부로 재정경제부와 국무총리실 소속 기획예산처로 분리된다. 예산 편성·조정은 기획예산처가 맡고 재경부는 경제정책·세제·국고·공공기관 업무를 담당한다. 당초 논의됐던 금융위원회 기능 조정과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연계 법안 난항으로 개정안에서 빠졌다.
환경부는 기후부로 확대 개편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맡아온 전력·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전환 정책이 기후부로 이관되면서 기후·에너지·환경을 아우르는 통합 컨트롤타워가 구축된다. 원자력은 건설·운영을 기후부, 수출은 산업부가 맡는 분담 체계로 조정되고 석유·천연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정책은 산업부 소관으로 유지된다. 기후부는 생태 보전·오염 관리·환경 규제에 더해 탄소중립, 기후변화 대응,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 수급 조정까지 총괄한다. 이를 뒷받침할 기후전략·에너지정책 전담 조직이 신설되고 기재부 소관이던 기후대응기금과 녹색기후기금도 기후부로 이관돼 정책 설계에서 예산 집행까지 원스톱으로 운용된다. 정부는 기능 통합으로 중복 사업을 줄이고 예산·인력을 효율화할 수 있다고 보지만 실제 성과는 전력 수급 안정과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달성할 실행력에 달려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밖에도 여성가족부는 성평등가족부로 확대되고 통계청과 특허청은 각각 국가데이터처·지식재산처로 격상된다. 교육 분야에선 부총리 겸임 체계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중심으로 전환된다. 방송통신위원회 폐지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신설은 별도 법 처리가 필요한 후속 과제로 남았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