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니스트·문학박사
지난달 당진에서 시비 답사를 하면서 한국문단 최초로 신춘문예 5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천재 시인 이근배를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 그의 문학관 건립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하면서 한 인물을 온전히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지난한 역사적 성찰을 요구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근배 시인은 1940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독립유공자 아버지를 둔 시인은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후 조부의 한학 가르침 아래 성장했다. 공주사대 대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택해 김동리에게서 소설을, 미당 서정주에게서 시를 사사했다. 서정주의 서문을 받아 첫 시집을 냈고, 이후 1961년부터 1964년까지 경향, 서울, 조선, 동아, 한국일보를 아우르는 5개의 신춘문예 타이틀을 거머쥐며 한국 문단을 일거에 휘어잡고 그의 문학을 꽃피웠다.
이근배 시인의 시들은 높은 문학성과 천재성을 인정받아 전국적으로 30여 개의 시비가 있고, 그중 다섯 개가 고향 당진에 세워져 그의 문학적 위상을 입증하고 있다. 당진에 있는 그의 시비는 이근배 시인이 고향에 남긴 공적인 기록이자 당진 시민의 자부심을 형상화한 결과물이다.
필자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당진시청 앞 광장이었다. 새롭게 단장된 광장 한쪽에 웅비하는 듯한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는 시비에는 「새 당진이 솟아오른다」라는 제목의 시가 새겨져 있다. 당진 제2교와 제3교 사이 하천 산책로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수줍은 듯 자리 잡은 「냉이꽃」 시비는 순수한 문학적 본령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바다와 맞닿은 삽교천 함상공원 옆 바다공원에서는 「마침내 통일의 그날이여, 영원한 겨레의 자유 평화여」라는 시비를 만났다. 또 일몰과 일출을 모두 감상할 수 있어서 유명한 왜목마을 해수욕장에는 「왜목마을에 해가 뜬다」라는 시비가 타임캡슐비 옆에 해를 기다리는 듯 서 있다. 마지막으로 송악읍 광명리 나라사랑공원에서 마주한 「조국에 바친다」라는 시비는 나라를 위한 헌신과 희생의 정신을 기리는 내용으로 우리에게 무거운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당진의 다섯 시비는 시인의 문학적 역량과 더불어, 고향의 발전, 자연 예찬, 국가적 가치 수호 등 다양한 공적인 영역에서 그의 이름이 어떻게 활용되고 기념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명징한 증거들이다.
그러나 이근배 시인의 문학 세계는 그 찬란한 성취만큼이나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시비 답사를 마치고 시인의 뿌리인 송산면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생가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회화나무 일대 정비사업과 연계하여 논의 중인 이근배 문학관 건립 논란만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천재성을 지닌 당진 출신 이근배 시인을 통해 지역을 관광자원화하려던 시도가 그의 과거 전력이 역사적 잣대와 맞부딪혔기 때문이다.
문학관 건립을 반대하는 측은 “문학은 도덕의 일부”라며 이근배 시인을 비판한다. 친일에 앞장선 백선엽을 ‘구국의 명장’으로 찬양한 시를 쓴 것과 미당 서정주 기념사업회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 등은 역사 인식의 결함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해바라기 문학가”, “몰역사적인 인물”로 규정하며, 당진에는 『상록수』 작가 심훈 문학관이 존재하기에 그와 상반된 가치의 인물을 기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이다.
반면에 문학관 건립 찬성 측은 그를 “당진이 낳은 천재 시인”으로 추켜세운다. 신춘문예 5관왕, 한국시조시인협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은관문화훈장 수훈 등 화려한 이력은 분명 당진 문학사의 자랑이다. 그래서 그의 벼루와 원고, 시집, 상패들을 한자리에 모아 ‘문학적 자산’으로 남기자는 설득력이 있는 주장을 펼친다.
결국, 문학관 건립 논의는 현재 중단된 상태지만, 백선엽, 서정주와 마찬가지로 시인의 공과 과가 얽힌 채 그의 이름은 여전히 지역사회의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그는 분명 문학 천재임에 틀림이 없다. 시조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형식과 감각을 결합시켜 한국 시조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의 고향 당진에 세워진 그의 시비는 그 빛의 결정체이자 시대의 흔적을 비추는 거울이다. 동시에 그의 생애 역시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를 안고 있다.
돌아오는 길, 바다 건너 석양이 붉게 번졌다. 그 붉은 빛 속에서 나는 그의 시 한 구절을 떠올렸다.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여, 그대의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논란 속에서 그의 문학관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지만, 그의 시비는 여전히 당진의 바람 속에서 조용히 시를 노래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