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전 대전문인협회장

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경험하지만 내 생각과 같은 사람은 적다는 걸 깨닫습니다. 생김생김이 각자 다르듯 살아가는 모습도 모두가 다릅니다. 살아가는 사고방식이 다르고 비전이 다르고, 성격 또한 다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개성을 나 몰라라 하고 나의 것에 맞추어 주길 원합니다. 그래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손가락을 살펴봅니다. 길이도 다르고, 굵기도 다르고, 생김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릅니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손가락의 쓰임이 다 다릅니다. 직구, 커브볼, 너클볼은 손가락의 쓰임에 따라 달라지는 구질입니다. 계속 직구만 던지는 투수의 공은 치기가 쉽습니다. 직구만 생각하고 있으면 만사 해결입니다.

서로 맞춰가며 세상 살아가는 게 현명한 방법이지만 내 생각만 고집하고 타인의 잘못된 점을 들추길 좋아하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목소리가 크면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매한 사람도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논리적으로 파고 들어오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무기를 가져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무기 없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나에게 모든 걸 맞추려 생각하지 않는 삶은 현명한 삶입니다. 상대의 개성을 인정해주는 삶은 고차원적 삶입니다.

흔히들 말하지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요. 우선 남을 탓하기 전 자신을 한 번 돌아본다면 자신도 남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행동과 말로 수없이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도 단점은 많습니다. 조물주가 나를 창조하실 때 나에게만 좋은 점을 송두리째 주지 않았습니다. 모자란 능력도 같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에게도 단점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가면을 쓴 환상들이 판토마임을 연출하는 무대 위에서 내 의식에 톱질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괜히 기뻐집니다. 말 한마디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우매한 일입니다. 친구를 많이 만들기가 어려운 세상에 왜 적을 만들어야 할까요? 좋은 친구는 피로회복제와 같습니다.

내 생각과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드뭅니다. 각자의 개성이 있습니다. 상대의 개성을 존중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를 존중하며 사는 사람들은 미모도 행동거지도 모두 예쁘기만 합니다. 그래서 존경받습니다. 남은 삶을 절름거리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지금 높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 자리에 언제까지 앉아 있을 건가요. 권불십년이라 했습니다. 얼마 아니 가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후회할 일을 왜 합니까? 겸손은 자기 주위로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의자처럼, 체인이 끊어진 낡은 자전거처럼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들이 모여들지 않습니다. 적당량의 수초가 있어야 고기들이 모입니다. 혼자서 잘난 체, 아는 체, 있는 체하는 것은 참 우매한 짓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진 병 중에 ‘거절결핍증’은 정말 쓸 만한 병입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부탁을 받으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릴 적 흉년에 넘겼던 미끄러운 메밀묵 한 그릇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영광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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