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 현대마임연구소 제스튀스 대표

가을이 지나고 연말이 다가오면 예술단체들은 내년도 공모와 지원사업 준비로 분주하다.

이 시기는 창작의 열정을 재정비하는 시간이기보다는, 내년도 지원사업을 위한 획일화된 ‘행정 서류’를 붙잡고 씨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기초예술 장르 예술단체들은 매년 반복되는 ‘예술행정 서류’의 무거움과 고충을 안고, “창작보다 서류가 시급하다”는 말을 자주 이야기하게 된다.

새로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단체의 대표로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중 하나는 작품 평가가 아닌 획일화된 지원사업 신청 잣대이다.

이는 창작의 유연성을 소극적으로 만들고, 오직 행정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서류 창작’을 가속화시킨다. 피할 수 없는 당면 과제임에도 서류 번아웃 같은 상황을 만날 때 심리적 부담감을 단순한 소화제 알약으로 진정시키기는 어렵기만 하다.

지속 가능한 작품의 가치를 담아내는 과정의 시간과 노고를 무색하게 만드는 변함없는 행정 시스템은 결국 하던 작업을 멈추게 하고 힘의 에너지를 ‘서류 번아웃’으로 초래하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한다, 예술가의 현장 집중력을 소극화시키고 창작자의 예술적 고민 대신 행정적 불안함에 갇히는 상황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비효율적인 제도화가 만든 ‘행정 만능주의’의 괴리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과연 어떤 사이다 해결책으로 위로가 될것인지의 고민은 중요한 현시점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안성맞춤의 예술행정 기획자를 찾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처럼 우리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시스템은 행정 편의를 위해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는 획일화된 서류 양식을 고수하며 비효율적인 비변화 된 제도화를 고수하고있다 심지어 계획대로 되지 않은 불가피한 창작 과정의 변화까지 행정적으로 자세히 소명해야 하는 과도한 요구마저 큰 부담으로 자리한 지 오래되었다. 물론 행정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순수 창작자들이 서류 작업에 소비하는 시간과 심리적 부담을 줄이려는 개선 노력들이 점차 진행되고있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전히 전문 인력 접근성의 부재가 가장 안타까운 현실이다.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서류 지옥’ 속에서 ‘만능 해결사’ 기획자를 만날 확률은 지극히 낮으며,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여전히 일부 대규모 기업 중심의 순환 구조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지역 현장에서 필요한 안정적이고 ‘안성맞춤’의 행정 지원은 창작자들이 펜 대신 본인들의 작업을 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던가. 이제 관(官) 단체와 일반 예술단체들이 함께 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대부분 예술단체의 고민거리인 창작자의 행정 업무 부담 가중을 줄이고 전문 행정 인력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에 모두가 동감할 것이다. 이를 통해 예술 본연의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서류를 최소화하여 과도한 과정과 정산 복잡성을 줄이고, 창작 과정의 자율성 및 유연성을 존중해야 한다. 장르와 규모를 불문한 획일적 행정 기준에서 벗어나, 장르 및 규모별 맞춤형 간소화 모델을 도입하여 대규모와 영세한 기초예술 단체 간 행정 기준의 비효율성을 해소해야 하는 것처럼.

새로운 창작물을 무대에 올리는 기쁨보다, 과도한 행정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서류 창작 이라는 용어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오늘날 기초예술 현장의 냉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창작의 유연성을 풍부하게 하려면, 서류 중심의 시스템이 과연 지속 가능한 예술을 위한 길인지 되묻고 싶다.

계획서에 표기된 ‘방향’과 ‘기대 효과’라는 문장을 다시 되새겨 보게 된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듯이, 분명하고 중요한 변화가 필요한 사안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예술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안성맞춤의 예술행정에도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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