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영은 정권의 기조와 철학이 지배하는 정치 놀음이다. 권력의 꼭짓점에서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예산을 독점 집행하니 정권의 말은 곧 법이다. 한 정권 내에서 말이 바뀌기도 하고 정권이 교체돼 정책이 바뀌기도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일 지난 정부의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과 관련해 “이번 정부에서는 이를 원상 복구할 뿐 아니라 나아가 더 많은 국가의 역량을 연구개발에 투입할 방침”이라고 새로고침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이라는 과학기술 정책 국민보고회에 참석해 이같이 언급한 뒤 “대부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R&D 예산을 늘렸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내년도 R&D 예산을 전년 대비 19.3% 인상한 35조 4000억 원 규모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역대 최대 인상 폭이다. R&D 예산 대폭 삭감을 경험한 과학기술인들에게 희보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통령은 “배를 곯고 논과 밭을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키려 했던 선배 세대의 노력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역사적으로도 과학에 관심을 가진 국가는 흥했고, 이를 무시하는 국가는 망했다. 국가도, 개인도, 기업도 공부해야 한다. R&D에 투자해야 미래가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어느 정권에서고 R&D의 중요성이 간과된 적은 없다. 어떤 자세로 뒷받침해주느냐 하는 실체가 달랐을 뿐이다.

‘실패할 자유와 권리’ 보장은 이날의 백미였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는 R&D 성공률이 90%를 넘는다고 한다.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가”라며 결과가 보장되는 무난한 연구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고 점잖으면서도 준엄하게 타일렀다. 그러면서 “어려운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내는 일인데 설령 실패하면 어떤가. 실패를 용인해야 제대로 된 연구개발이 가능하고 그래야 나라가 흥한다”고 신뢰를 발신했다.

R&D 행정 및 평가 체계의 혁신과 관련해선 “행정편의주의적으로 부정을 막겠다고 아예 혁신을 안 해버리면 사회 발전이 가로막힌다. 다수를 믿되 악용하는 데 대한 제재를 세게 하자. 10배가 아닌 20∼30배 제재를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를 대신해 “장은 담그고 구더기는 철저히 막자는 입장”이라고 철학을 덧댔다. 연구비 부풀리기 등 부정 수급은 발 디딜 틈이 없도록 하는 게 맞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실패한 이들을 차별하지 않는 것을 넘어 오히려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연구해보자는 대통령의 제안에서 진심이 읽힌다. 그만하면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앙양하는 멍석은 잘 깔아 줬다. R&D 예산은 공익을 위한 마중물일 뿐이다. 이공계 인재들이 이탈하지 않고 국가 발전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수준의 지원과 충분한 성과 보상을 아끼지 않는 사회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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