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이 땅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구인들 평화롭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없겠지. 심지어는 첨단무기로 온 나라를 뒤덮어서 적국이나 적대세력이 감히 넘보지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국가정책을 그 방향으로 펼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진정한 평화를 바라지 않을까? 사람들은 평화로운 시기에도 완전무장을 해야 하고, 완전무장한 전쟁시기에도 평화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철저한 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옳은 것일까? 그러한 말과 행동에 대한 평가는 한 두 마디로 간단히 정리할 사항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그렇다고 굉장히 복잡하고 치밀한 논리라면 정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무서운 전쟁 속에서 산다. 개인의 삶이라면 조금 다르게 보이지만, 국가라는 차원에서 생각하여 본다면 하나에서 열까지가 완전히 전쟁상황이다. 실제로 총칼을 가지고 서로 맞대서 싸우는 것만 아니라, 일상생활이 전쟁상황이다. 특히 국가들 사이에 오고가는 말들이나 거래를 보면 다 그냥 싸움이다. 풍요로운 경제생활을 하고 품위있는 문화생활을 한다면서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전쟁이다. 모든 국제회의라는 것을 보면 겉으로는 화려하고 교양 높은 말들과 식단으로 꾸려지지만 그것들로 가려진 밑이나 속을 보면 무서운 칼날들을 품고 있는 것을 본다. 전쟁이다.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우정관계라고 말하는 국가원수들 사이에 주고받는 그 말과 몸짓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도 날카로운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단순함이 없는 듯이 보인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본다. 문명한 이 시기에, 통신, 재정, 경제, 무기, 식량, 문화, 학문, 기계기술, 에너지, 특히 인터넷 따위가 이미 국경이라는 것을 초월하여 복잡하고 치밀하게 얽혀 작동하는 이 시기에 더 이상 전쟁에 대한 상상,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살지 않도록 되어야 한단 말이다. 힘있는 나라에서 어떤 미친 정치가가 나타나서 ‘나의 모든 정책은 오로지 우리나라의 이득만을 위하여 할 것이다’라고 선언할 때,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하면서 표를 던져 당선시킨다. 그러면 또 다른 나라의 정책 책임자들도 덩달아서 ‘오직 나의 정책을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만 실시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사라지거나 묽어져가는 경계와는 반대로 아주 탄탄하고 높고 견고한 담과 벽을 쌓는다. 그 비용은 너무 크다. 이 때 망상을 한다. 좀 합리성을 띄고 양심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국가들의 책임을 일정 기간 맡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들이 정말로 허심탄회하게 복잡한 계산 없이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서로 다투지 않고 온 세계가 하나처럼 사이좋게 살자는 논의를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한 힘있는 미친놈이 분탕질할 때 다른 작고 힘이 약하다는 여럿이 모여서 공동으로 대응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망나니처럼 분탕질하는 그에게 여러 나라의 수반들이 꼬리 흔들면서 아양을 떠는 모습들은 참으로 서글프다.
복잡한 속내용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래도 단순한 생각을 펼치고 그렇게 나가자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좋아한다. 국방력으로는 세계에서 4위나 5위에 속한다고 자랑한다. 그러면서도 어마어마한 경비를 들여 첨단전쟁무기를 확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상대방이나 주변 국가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에 대하여 세게 반대한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이른바 강대국들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를 폐기하자는 운동을 적극 펼쳐야 한다. 물론 핵에너지를 평화롭게 활용하기도 하지만, 어마어마한 위험을 가지고 있는 그것을 그렇게 애지중지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그런 말 속에는 언제나 강력한 핵무기로 자기나라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를 숨기고 있다. 그 주장 자체가 없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미 어마어마한 나라들이 암암리에 그 무기를 생산하고 보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핵없는 세계를 만들자는 주장은 헛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핵무장으로 안전하며, 자국의 안보가 확보되며, 세계에 평화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헛것이 아니란 말일까? 내가 보기엔 둘 다 허황한 듯하다. 그렇다면 덜 위험한, 경비가 적게 드는, 부드러운 허황함을 선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다시 제안한다. 일단 모든 나라에서 핵개발을 중단하자는 운동을 펼치는 이들의 크고 단단한 연대운동이 펼쳐지면 좋겠다. 물론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는 것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핵발전소 역시 폐기해야 할 것이다. 그 대신 아주 힘있게 대체에너지 정책을 펼칠 일이다.
할 수만 있다면 무수히 많은 방위조약들을 평화조약으로 바꾸는 운동이 일어나면 좋겠다. 특히 우리 땅에서 ‘정전협정’이 속히 ‘종전협정’을 거쳐 ‘평화협정’이 되도록 추진할 일이다. 평화협정 속에 들어갈 내용은 이미 여러 번에 걸쳐서 나온 것들에 다 들어 있다. 국경이 없는 것처럼 온갖 인간의 삶의 분야에서 자유로운 소통과 서로 협력하는 삶의 자리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 사이에 적은 없다. 남이란 없단 말이다. 원수를 사랑하란 말은 원수는 없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관계에 눈치를 보지 말고,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들과 아주 평화롭고 부드러운 교류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일단 정치권에서 법을 풀고 민간 차원의 교류의 문을 열어야 한다. 생각이 그렇게 바뀌면 현실도 그렇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다시 평화에 대한 생각과 생활이 아주 자유롭게 꽃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