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지난달 21일 이재명 정부 첫 중앙행정기관 감사관 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윤 실장은 “무사안일은 독가스와 같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조용하게 조직을 망가뜨린다”면서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명토를 박았다. 무사안일만 과녁 삼은 게 아니다. 갑질 등 3대 악습은 무관용 원칙 하에 엄벌하겠다고 포고했다. 갑질을 나무라는 언성은 낭창한데 갑질 금지를 담은 전국 지자체의 조례는 형식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공공기관 내 갑질 근절을 위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배포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전국 광역자치단체의 관련 조례 상당수가 법 기준에 미달하는 갑질 조례를 운영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최근 “정부가 2019년 공공분야 갑질 근절 가이드라인을 배포한 뒤 현재까지도 관련 조례가 부재하거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조항, 도리어 역행하는 내용의 조항을 포함한 조례를 시행 중인 지자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핀잔했다.

단체에 따르면 2021년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음에도 이를 반영한 조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피해자 보호 조항도 불충분했다. 강원·경북·충북은 괴롭힘이 확인된 이후에만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하도록 규정했고 경북·전남은 불리한 처우 금지 조항조차 누락했다고 한다. 행위자 징계 조항의 경우도 다수는 ‘징계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에 그쳤다. 징계 등 조치 규정을 아예 마련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대전시는 교집합이 많다. 갑질 행위 근절 및 피해자 지원 조례는 존재하지만 다른 시도와 마찬가지로 실제 피해자 보호나 행위자 제재로 이어질 구체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의 조례도 행위자 징계 근거를 ‘징계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두고 있다. 제재에 강제성이 없다 보니 갑질 행위자에 대한 실질적 처벌이 어렵고 제도 운영의 실효성이 떨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피해자 보호 규정 역시 빠져 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조사 기간 중 피해자 분리’ 조항을 조례에 반영하지 않아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또 ‘객관적으로 조사한다’는 문구조차 없어 조사 절차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거론하기 겸연쩍은 액면이다. 조례만 놓고 보면 행위자 징계와 신고자 보호, 조사 투명성을 보장하기에 미흡하기 짝이 없다.

직장갑질119는 ‘2025년 17개 광역시도 갑질 조례·가이드라인 개선 의견서’를 국무조정실에 제출했다. 단체의 주장대로 허위신고 시 징계 조항 등은 폐기하고 기존 가이드라인을 실효성 있게 개선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행위자 제재를 의무화하고 피해자 보호를 명문화해야 실행력을 갖는다. 갑질을 하지 않음으로써 갑질 금지 조례를 사문화시킬 수 있다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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