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에너지·자율주행 등 완화되나
지방산업 활성화·균형발전 위한 포석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기업활동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의 완화·철폐 의사를 밝히며 산업 질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여러분이 제일 필요한 게 규제 같다. 완화, 철폐 등 가능한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면 제가 신속하게 정리하겠다”고 총력을 약속했다. 이는 국내 1000조 원 이상 투자 계획을 밝힌 대기업들에 대한 화답으로 해석된다. 대전의 한 경영학 교수는 “단순 투자만으로는 경기 회복에 한계가 있어 규제 완화로 기업활동을 촉진하려는 것”이라며 “지방 산업의 활성화와 균형발전을 위한 포석”이라고 평가했다.
규제 완화의 맨 앞줄은 금산분리 완화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강화된 규제로 산업자본이 금융사를 지배하거나 은행 자금을 계열사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한 장치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되면 AI·로봇·바이오 등 신성장 산업으로 민간 자금이 유입될 전망이다. 대덕특구 관계자는 “CVC(기업형 벤처캐피털) 제도 완화로 대학·출연연 스타트업에 대기업 자금이 직접 들어올 것”이라며 “대전은 반도체·통신·로봇·양자보안 등 딥테크 파이프라인이 탄탄해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서는 이번 규제 완화 기조가 현장 중심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자율주행·모빌리티 업계는 호출·공유 서비스 제한, 운행 구역 허가제 등 규제 철폐를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세종은 국토부 지정 자율주행 규제자유특구로 도로망이 단순하지만 제도 장벽 탓에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다. 업계는 “승차공유나 심야 자율주행택시 실증을 허용해야 기업 진입이 가능하다. 지방이 제도 실험의 최적지”라고 강조했다.
에너지 분야에선 발전설비 인허가·송전선로 규제 완화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충남은 우리나라 전력의 5분의 1을 생산하지만 LNG·SMR 전환 사업이 환경영향평가와 입지 제한에 막혀 있다. 충북도 태양광·ESS·SMR 실증단지 추진이 복잡한 인허가로 지연돼 전력 P2P 거래 허용을 요구 중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KAIST 등은 한전망 접속 제한을 풀어 AI 전력예측·분산전원 실증을 확대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KDI가 제시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기자본비율 20% 의무화’ 방안에 반발한다. 자금력이 약한 지역 건설사들이 배제될 수 있다는 이유다. 대전의 한 건설사 관계자는 “HUG(주택도시보증공사)나 지역신보를 통한 ‘지역전용 PF 보증계정’을 신설해 부실 방지와 지역 활성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 규제에 대한 완화 기대도 크다. 기업계의 우려가 큰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내년 3월 시행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대전의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단체행동 면책 범위 확대는 물류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개선을 요구했다. 택배업계는 “초심야배송 금지는 지방 인력난을 악화시키고 혁신산업을 무너뜨린다”고 반발하고 있다. 다만 이 대통령이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대기업의 경우 그 문제(노동처우)에 대해 조금 더 관용적이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한 만큼 노동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정은한 기자 padeuk@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