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대표 토성 ··· 조선 지리지서도 먼저 등장
토성(土姓)은 그 지역의 영토를 뜻하는 토(土)와 성씨를 뜻하는 성(姓)이 합쳐진 말로 그 지방에 토착하면서 그곳 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집단을 말한다.
토성은 그 지역의 읍사(邑司)를 구성하는 지배 세력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친족 집단이라 할 수 있다.
토성이라는 용어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가 편찬되던 15세기까지도 널리 쓰였는데, 세종실록지리지 공주목(牧) 성씨조(條)에는 “토성(土姓)이 7이니, 이(李), 정(鄭), 송(宋), 박(朴), 황(黃), 고(高), 임(任)”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들은 모두 공주을 관향으로 하는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성씨인데, 현재는 공주이씨(공산)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자취가 남아 있지 않다. 공주의 대표적인 토성이 공주이씨다. 공주이씨는 공산이씨(公山李氏)라고도 하는데,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조선 전기 지리지의 공주 성씨조에 가장 먼저 등장할 정도로 큰 성씨이다.

이 외에도 공주의 외촌성(外村姓)으로는 황(黃), 백(白), 하(河) 세 성씨가 있었고, 당나라에서 귀화한 성씨로 김(金)씨가 있었으며, 공주의 속현이었던 신풍현과 유성현, 이미 사라지고 없는 향소부곡의 성도 기록에 보인다.
고려시대 공주에 속했던 신풍현은 현재 공주시 신풍면 일대 지역으로, 신풍현의 토성으로는 백(白), 박(朴)씨가 있으며, 신풍현 망성(亡姓)으로는 최(崔), 신(申), 촌성(村姓)으로 현(玄)이다.
없어진 완부, 귀지(貴知) 2개 부곡(部曲)의 성씨로 유(兪)씨가 있으며,유구역(維鳩驛)의 성씨로 최(崔)씨가 있었음이 기록돼 있다.<출처-향토대전보충>

이명덕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해 대승(大勝)한 이천장(李天章)이 있고, 임진왜란 때 부산이 위급함을 알고 출전, 순절해 부산 충절사에 제향된 이연헌(李延憲) 등이 이름을 알리고 있다.
공주향교의 문서에는 공산이씨들이 전 시기에 걸쳐 다수 등재돼 있으며, 특히 공주 공산성 내의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에도 공산이씨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 공주 지역의 대표 성씨로, 유력한 사족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1851년(철종 2) 명탄서원을 중건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현재 명탄서원의 아랫동네인 공주시 월송동에 동족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