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부터 유행 이지함은 16세기 인물 "이름빌린 저작" 설득력
최근 토정비결을 본 주부 김정심(57·대전 유성구 관평동) 씨의 말이다.
그는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가끔씩 인터넷 등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토정비결을 본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아보고 싶은 심정에서 운세 등을 가끔 본다”며 “토정비결의 점괘가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확인하기보다는 어려운 일에 맞닥뜨렸을 때 나름 상담사 역할을 해준다는 생각에서 보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인생 일기예보’라고도 불리는 토정비결.
해가 바뀔 때 그 해의 운세를 살펴보기 위해 토정비결을 보는 것은 우리나라의 풍습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대부분 오래된 우리의 전통으로 알고 있지만 토정비결은 정작 조선시대의 새해 풍습 목록에는 들어가 있지 않다.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관련 연구자들은 19세기 후반부터 토정비결이 널리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토정비결의 저자가 조선시대의 학자 토정 이지함(1517∼1578)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의아한 일이다.
이지함의 저작이니 당연히 16세기부터 유행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토정비결의 저자가 이지함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결론적으로 토정비결은 이지함의 이름을 가탁한(빌린) 저작 쪽으로 무게가 쏠리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이지함 평전’이란 저서 등을 통해 이 같은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누군가가 토정의 이름을 빌려서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이후 주역, 점술, 관상비기에 능했던 이지함의 행적이 민중들에게 널리 전파됐고, 후대에 비결류의 책인 토정비결이 만들어지면서 저자로 내세운 것일 수 있다는 게 신 교수의 추정이다.
신 교수는 “토정비결에 대해서는 이지함의 저작이라는 설과 그의 이름을 후대에 가탁한 것이라는 주장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면서도 “숙종 때 그의 후손인 이정익이 이지함의 유고를 모은 문집인 ‘토정유고’를 간행할 때 토정비결이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현재 유행하고 있는 토정비결이 이지함의 저작일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교수는 “토정비결이 이지함 사망 직후에 유행한 것이 아니라 300여년 뒤인 19세기 후반에 널리 퍼진 점을 고려할 때 이지함의 이름을 가탁한 것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면서도 “다만 토정비결이 주역과 체제가 유사하며 이지함이 비기에 능했음을 감안할 때 토정의 사상과 토정비결이 완전히 별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토정비결의 저자문제를 놓고 이지함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만, 이지함이 역학과 천문에 밝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이 한 해의 운세를 살펴달라고 요청해 저술했다는 설이 현재 지배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이지함이 자녀의 사주가 신통치 않게 나오자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지함이 자녀의 사주를 풀어본 결과 벼슬이나 장사를 해볼 만한 재간도 없는 것으로 나왔고, 사주팔자를 해석할 만한 능력도 없었다.
이에 자신의 능력을 전수해주기 위해 사주팔자 보는 법을 간추려서 토정비결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권순재 기자 press@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