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 영채를 7백리에 걸쳐 세우다.(2)

선주가 마량의 진언을 무시해 버렸으나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을 때 선봉 풍습이 찾아와 아뢰었다.
“폐하, 군사들이 폭염 중에 나무 그늘도 없는 평지에 진을 치고 있으니 폭염을 견딜 수 없습니다. 더구나 식수길이 멀어 힘이 드니 달리 방책을 정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짐이 미처 생각지 못했구나. 삼군을 서늘한 숲과 시냇가에 영문을 옮겨라!”

선봉대장 풍습이 선주의 명에 따라 군대를 산 기슭아래 숲 근처와 시냇가로 이동할 거라는 말을 듣고 마량이 선주에게 아뢰기를
“폐하, 군대가 한번 움직이게 되면 이 틈을 이용하여 동오군이 준동할 것입니다. 그때는 어찌하시려고 군대를 옮기라 하셨습니까?”
“마량의 말이 옳도다. 허나 짐도 방책을 마련해 두고 그리한 것이다. 오반장군에게 명하여 군사 1만 명으로 동오 진영 가까이 진을 치게 하였다. 그리고 또 별도로 내가 8천 정병을 거느리고 산골에 매복하고 있을 작정이다. 육손이 내가 군대를 움직인 것을 안다면 반드시 공격해 올 것이다. 이때 오반의 군사가 거짓 패하여 돌아오면 육손은 추격을 계속할 것이다. 이리된다면 내 매복한 군사에게 꼼짝없이 어린 육가가 사로잡힐 것이다.”

선주의 설명에 모든 신려들이 일제히 찬성하며 말하기를
“폐하의 신기묘산이 절륜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마량만은 이에 의아심을 가지고 선주에게 아뢰기를
“폐하, 요사이 승상께서 동천의 요해지를 시찰하며 위병을 막기 위한 구상을 한 모양입니다. 폐하께서 이번에 옮기신 영채를 그림을 그려서 승상께 문의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하. 짐도 병법을 아는데 승상의 수고를 빌릴 필요가 있겠소?”

“옛날 말에 아는 길도 물어가라 했습니다. 굽어 살피시옵소서.”
“그렇다면 공이 도면을 만들어 승상을 만나보고 물어 오라. 행여 문제가 있다면 속히 돌아와서 짐이 알게 하라!”
마량은 선주의 결심을 받아 7백리에 걸친 영채의 도면을 세세히 그려서 가슴에 품고 공명을 찾아 동천으로 길을 떠났다.
그 무렵 효정과 이릉성을 중심으로 전운이 서서히 감돌고 있었다. 생령의 목숨을 불로 태울 참혹한 이릉전쟁은 점화의 시점을 찾고 있었다. 선주는 그런 참혹한 전쟁이 자신을 희생물로 삼고자 다가오건만 전혀 낌새를 차리지 못하였다.

‘유비의 천운이 다한 것일까? 한 평생 전장에서 병법을 먹고 살아온 선주가 착각을 일으킨 것일까?’
더위에 지친 병사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고자 영채를 숲속으로 옮기게 했다. 마량의 눈에는 이것이 화근이 아닐까 싶어 촉진영의 병영도를 그려서 공명을 찾아 길을 떠났다.
이럴 때 한당과 주태는 의미 있는 미소를 주고받으며 맛깔스런 정보 하나를 들고 육손 도독을 찾아 보고하기를
“지금 촉병은 40여 곳의 영채를 모두 산 아래 시냇가 숲속으로 옮기었습니다. 더위를 못 이겨 옮기다 보니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이 틈을 이용하여 공격을 명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육손은 보고를 받고 바로 말을 타고 높은 지대로 올라가 촉병의 동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평야지에는 1만 명쯤의 군사가 있으나 늙고 약한 군사다. 진 앞에는 선봉대장 오반이라 대서특필한 큰 기가 바람에 휘날렸다. 육손은 굳게 입을 닫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데 주태가 입을 열어 말하기를
“저런 병약한 군사는 단숨에 쓸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한 장군과 두 길로 치고 들어가 결딴을 내어 버리지요. 출전을 허락해 주십시오. 만약 실수가 있으면 군령을 받겠습니다.”
육손은 주태의 말이 끝나자 채찍을 들어 먼 산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 산골을 보시오. 은은한 살기가 충천하니 저것은 복병이 있는 것이 분명하오. 이것은 계획적으로 병법을 쓴 것이오. 앞 평지에 약한 군사를 두어 우리를 유인하고 산골에는 정예부대를 숨겨서 우리 길을 끊자는 수작이오. 제공들은 저런 얇은 속임수에 넘어가면 아니 되오. 절대로 나가지 마시오.”
한당과 주태는 육손이 겁을 먹고 싸우지 않는다고 비웃었다.
다음날 촉장 오반은 오영 앞으로 나와 싸움을 돋우었다. 그러나 응대하지 않으니 욕을 퍼 붓고 칼을 휘두르고 창을 돌리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군사들을 시켜 갑옷과 투구를 풀고 옷을 벗어 알몸으로 잠을 자는 척하게 했다. 오병을 아주 바지저고리로 알고 하는 행동이었다. 이런 촉병의 무식한 행동거지를 바라보던 서성과 정봉이 참다못해 육손을 찾아가 품신하기를

“도독께서는 촉병의 행동거지를 보고도 우리를 참으라 하시렵니까? 사내대장부가 전장에 나와 저 같은 수모를 당하고 어찌 고개를 들고 살라하십니까? 한번 나가 싸우라 하십시오.”
두 장수가 분해서 치를 떨면서 말했으나 육손은 대답하기를
“귀직은 혈기지용이 있을 뿐으로 손오의 참다운 병법의 이치를 모르는구려. 유비가 꾀를 쓰고 있는 것을 어찌 못 알아본단 말이요. 유비의 얕은꾀가 3일 후에는 탄로가 날 것이오.”

“3일 후에 유비가 영문을 옮긴단 말씀인데 떠나버리면 어떻게 공격을 합니까?”
서성이 못마땅하여 항의하듯 말하자 육손은 나직이 말하기를
“나는 유비가 영문을 옮기기를 기다리고 있소. 3일간만 어떠한 수모를 겪을 지라도 참아야 하오.”
서성 등 제장들은 어이가 없어 하며 육손을 마음껏 비웃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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