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 영채를 7백리에 걸쳐 세우다.(3)
서성과 여러 장수들이 육손을 비웃고 돌아간 후 3일 되던 날 정오 무렵 육손은 제장들을 대동하고 성위에 올라 촉병을 바라보았다. 오반의 군사들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지난 새벽에 뜬 것이다. 육손은 한 동안 코 밑에 있는 너른 평지와 멀리보이는 산골짜기들을 세세히 눈여겨 살피고 바위가 많은 골짜기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 바위산 골에 살기가 가득하니 유비의 군대가 움직이나 보군!”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촉병의 무리가 완전 군장을 갖추고 유비를 옹위하여 쏟아져 나왔다. 육손을 따라온 제장들은 육손의 혜안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육손은 다시 눈앞에 전개된 지형지물을 다 읽고 큰 소리로 말하기를
“인제 유비의 창자 속까지 다 알게 되었으니 열흘 안에 촉병을 격파해 버리겠소.”
육손의 장담하는 말에 장수들은 허풍이 심하다고 고개를 모로 돌렸다. 그것은 처음 촉병이 이동했을 때 격파해야 할 것을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비의 영문이 7백리에 걸쳐 요해처마다 철옹성 같은 수비를 하고 있는데 한 매에 까부신다니 믿음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장수들의 이런 불평을 아는지 모르는지 육손은 다시 말하기를
“여러분은 병법을 알지 못하오. 유비는 일세의 효웅이고 지모까지 갖춘 자요. 처음 군사를 일으켰을 때는 군용은 정제하고 법도는 엄숙했소. 그러나 우리가 싸움에 응하지 아니하니 저들은 피곤해지고 군기가 해이해졌소. 내가 싸우지 아니하고 지키기만 한 것은 유비의 군사가 피로해지고 군기가 해이해 지기를 기다린 것이오. 자, 이제는 우리가 기다리던 때가 왔소. 우리 한 마음이 되어 분발합시다!”
제장들은 육손의 이 같은 말이 끝나자 육손의 큰 뜻을 알고 그 국량에 탄복했다. 이날 일을 시인은 시를 지어 육손을 찬양했다.
‘호장 속에 육도삼략 펴고 병법을 이야기하네./ 향기 높은 매를 던져 고래 낚는다./ 삼분 천하에 영웅도 많구나!/ 강남에서 육손이 또 나타났구나!/’
육손은 촉병을 깰 계책을 마련하고 나서 손권에게 표를 올렸다.
‘전하! 며칠 후면 유비를 완전히 격파하겠습니다.’
손권은 표를 읽고 입이 쭉 찢어지게 좋아 하며 중얼거리기를
‘이 나라에 또 다시 이인이 나왔구나! 내가 무슨 근심이 있겠느냐? 내가 감택의 말을 믿은 것이 유효했구나! 오늘날 육손의 글월을 대해보니 과연 육손은 유비를 이겨낼 명장이구나!’
손권은 곧 후원부대를 일으키라 명하고 친히 전쟁에 참가할 것을 결심했다.
한편 선주는 효정에서 수군을 다 싣고 오나라 국경지대로 깊숙이 들어갔다. 수륙 양면으로 대군을 영솔하고 들어가는 품새가 호호탕탕하여 천지를 뒤바꿀 것 같았다.
이런 대부대의 이동을 보고 황권이 선주에게 간하기를
“수군이 천리에 뻗은 강에 전함을 몰고 나가는데 전진만 하다가 문제가 일어나서 후퇴를 하게 될 때 물러날 계책이 있어야 합니다. 신이 앞에서 지휘하고 나가면 폐하께서는 뒤에서 후군을 거느리고 따라 오시어, 만약의 실수에 대비하십시오.”
“너무 소심하게 말하지 마라. 오병은 담이 떨어져 쩔쩔매는 판이다. 내가 친히 통솔하는데 무슨 지장이 생기겠느냐. 여지껏 없던 용기가 불시에 살아나 치고 들어오기야 하겠는가.”
선주는 자만에 빠져 황권의 말을 흘려버렸다. 그래서 군대를 두 길로 나누어 황권은 강북 군사를 거느리고 위구를 막게 했다. 선주는 친히 강남 제군을 지휘하여 강을 끼고 따로 영채를 세워 싸울 준비를 차렸다. 이릉을 두고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을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점화시간이 가까운 것이다.
이 무렵 위황제 조비는 천하에 널어놓은 정보망을 통하여 오촉전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때 위국의 정보망에 포착된 정보를 위황제 조비에게 보고하기를
‘촉병이 오국을 공격코자 대군을 몰고 들어가는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게도 종횡으로 영문이 7백리에 걸쳐서 길게 뻗었습니다. 군대를 40여 둔으로 나누어 산골짜기 숲속이나 강가에 영채를 세웠습니다. 유비의 장수 황권은 강 북편에 진을 치고 매일 백여 리 밖까지 보초를 세우고 수색을 줄기차게 하고 있습니다. 이점이 참으로 이상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황제 조비는 정보를 분석한 자료를 다 보고 나서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하하하. 유비가 목숨을 보존키 어렵게 패하겠구나!”
“폐하! 어찌 그리 속단하시나이까? 지금 유비의 군세가 하늘을 찌를 듯 대단합니다. 패할 일이 없습니다.”
“유비가 바보짓을 했구나! 7백리에 군대를 뻗어 배치해 놓고 적을 공격하다니 이치에 맞겠느냐?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천리 멀고 긴 곳에 험준한 산이며 습한 물길을 안고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병법에 꺼리는 일이다. 현덕은 반드시 육손에게 패할 것이며 열흘 안에 소식이 있을 것이다.”
위황제 조비는 그 애비 조조보다 더 영특한 모양이다. 한술 더 떠서 들어온 정보를 받아보고 예언을 하는 폼이 기가 막혔다. 여러 신하들은 황제의 예언을 두고 반산반의하면서도 유비가 쫓겨 갈 때 어찌해야 할 것인가 대책을 숙의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