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저녁자리를 하다 보면 이따금 노래방을 가게 된다.노래방이 생기면서 이전과 달라진 두 가지는 노래 실력이 ‘평준화’되었다는 것과 ‘끝까지 가사를 아는 노래’가 없다는 것일 것이다. 음정과 박자가 엉망이었던 친구 녀석이 노래방에 드나든 후 부쩍 노래 실력이 좋아진 것이나, 이전에 비해 한참 떨어진 필자의 노래 기억력이 그 증거다. 우리나라에 노래방이 처음 등장한 한 것이 1991년이니 노래방 역사도 내년이면 20년이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의 2007년 통계를 보면 전국에 있는 노래방 수가 3만 5000개에 달한다. 가히 ‘노래방 산업’이라 불러도 좋을 듯싶다.지금의 노래방을 있게 한 주인공은 일본의 무명밴드 연주자인 이노우에 다이스케다. 그는 단골이 회사 단합대회 반주를 요청하자 그 대신 즐겨 부르던 노래 반주를 녹음하여 테이프에 담아줬는데 이후 ‘8주크’라는 이름의 가라오케로 발전했다. 어제 한 조간신문에 ‘사기범으로 몰린 가라오케 발명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바로 ‘이노우에’ 이야기였다. 그가 자신의 초기 가라오케 기기의 설계도 등이 담긴 문서를 저작권이라고 하여 고령자를 대상으로 판매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허는 20년간 권리를 유지하는 데 비해 저작권은 저작자의 사후 50년까지 권리를 보호받는 차이를 이용해 투자자를 속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만약 그가 당시 가라오케를 특허로 냈다면 약 1억 5000만 달러를 로열티로 벌 수 있었다는 전문가의 분석이 있는 걸 보면 ‘때늦은 후회’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보상받고 싶은 심리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이노우에와 극명하게 대별되는 인물이 제롬(Jerome Lemelson)이다. 그는 에디슨에 견줄 정도로 많은 발명을 했고 600여 개의 특허를 갖고 있는 발명가다. 그는 40개 이상의 기술전문 잡지를 구독하고 중요한 것들은 세심하게 정리해 향후의 기술발전 흐름을 예측하여 발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략적 발명을 한 사람인 것이다. 그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바코드 스캐닝 특허로 750개 이상의 기업으로부터 거의 15억 달러를 벌여들였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미국의 특허법을 허점을 이용해 일단 미래에 나올 특허를 포괄적으로 출원하고 기술 발전에 따라 내용을 계속 보완하여 강력한 특허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그리고 나서 대기업들이 이미 해당 기술과 관련된 특허가 출원된 지 모르고 대규모 투자를 하였을 때 특허를 등록받아 공개하고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여 막대한 합의금을 받아냈다. 이 때문에 숨어있다가 먹잇감이 안심하고 있을 때 수면위로 떠올라 공격한다고 해서 ‘잠수함 특허(Submarine patent)’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예 그의 이름을 따 ‘레멜슨 특허’라고도 한다.적당한 비유는 아니지만 레멜슨은 개인 발명가에게는 ‘로빈후드’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생전에 그는 대기업과의 소송으로 벌어드린 로열티로 레멜슨 재단을 만들고 10억 달러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고 혁신적 발명가를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후원활동을 하고 있다. 타임紙는 지난 99년 이노우에를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아시아 인물로 꼽으면서 “마오쩌둥과 간디가 아시아의 낮을 변화시켰다면, 이노우에는 아시아의 밤을 바꿔놓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이노우에와 레멜슨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는 것 같다. 한 사람은 사기꾼으로 몰릴 처지에 있고, 한 사람은 위대한 개인발명가라는 평가받고 있다.두 사람은 모두 큰 부를 이룰 기회를 잡았다. 한 사람은 그 기회를 날려버렸고 다른 한 사람은 철저한 준비로 행운을 가져갔다.준비된 자였기 때문에 행운이 온 것이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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