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국
상무/충남취재본부장

머리를 들어보면 붉은 나뭇잎이 바람 따라 덩실덩실 춤사위를 뽐내며 하늘을 불태우고, 내려다보면 서로 아귀를 맞춰 꿰맨 듯, 이은 듯 붉은 양탄자가 땅을 곱게 물들이는 만추(晩秋)에 노모와 경주로 여행에 나섰다. 무릎 관절의 부실로 발걸음이 자유롭지 못한 터라 행여 세월이 더해 더 이상 거동이 어려워지면 그림의 떡이 돼버릴지도 모를 원거리 여행의 추억을 좀 더 쌓아드리기 위해 형제자매가 모두 참여한 동행이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과 거동이 불편한 사람과의 동행은 항상 이동의 제약을 낳게 마련이고, 노모와 일행의 편리한 이동을 위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려봤으나 묘책은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숙소를 나서면서 갑자기 묘책이 떠올랐다. 휠체어였다. 묘책이랄 것도 없지만 장애를 가진 가족이 첫 경험이다 보니 생각이 부족했던 것이다. 걷다가 힘에 부치면 휠체어를 이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휠체어 생각만 앞설 뿐 당장 구할 방법은 막막했다.

콘도에 노크를 했다. 수백 개의 객실을 가진 대형 콘도였지만 휠체어는 없었다. 이 정도 규모의 콘도에 휠체어가 없다면 주변에서 구하는 것은 힘들겠다고 판단한 우리는 노모의 관광에 적합한 짧은 동선의 이동을 계획하며 불국사로 향했다.

하지만 불국사에 도착하자 그렇게 애타게 찾던 휠체어가 눈앞에 등장했다. 불국사 매표소 옆 보관함에 비치된 휠체어는 직원을 통해 무료로 빌릴 수 있었고, 노모는 이동 중 다리가 불편하면 휠체어에 앉아 불국사 이곳저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 신라의 동궁, 안압지에서도 휠체어를 빌릴 수 있었고, 노모는 건강한 일행과 함께 아무런 불편 없이 즐거운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장애인을 배려한 휠체어 비치. 이 배려가 없었다면, 즉 휠체어가 없었다면 노모는 제한된 곳만을 구경하는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고, 함께 한 가족도 노모의 이동에 맞춰 움직이다 보면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휠체어 하나가 그 순간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고맙고 귀한 존재였고,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뜻깊은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많은 장애인이 살고 있다. 장애 중 가장 심각한 장애라는 마음의 장애인처럼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삐딱한 시선과 편의시설 부족으로 인해 겪게 될 불편한 경험 때문에 그들이 외출을 주저하고, 포기해버린 탓에 우리는 그들 중 아주 일부를 보고 있을 뿐이다.

장애인을 위한 공공건물의 편의시설 등은 그런대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 많은 곳은 여전히 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장애물이 즐비하며, 이들을 위한 사회의 배려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선천적보다는 후천적 요인에 의해 장애인이 된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 중 누군가는 뜻밖의 사고 등 후천적 요인에 의해 어느 순간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더불어 아무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애인 단체 등에서 진행하는 장애체험을 경험해보라. 장애를 갖는 순간 편의시설 부족으로 인해 일상이 얼마나 피곤한가를,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의 필요성을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

만추의 여행길, 자식과 동행한 노모의 가슴 벅찬 기쁨을 확인하는 것 못지않게 장애인을 위한 작은 배려 하나가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가를 확인하게 되는 소중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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