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양도공파묘군
◆ 순흥안씨 족보
용인시의 순흥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순흥안씨 제삼파(三派) 족보의 총목록집은 1825년(순조 25년)에 간행된 것으로, 조선 후기 순흥안씨 제삼파 족보의 수록 내용을 일별할 수 있는 자료이다. 2권 2책이며 목활자본이다. 표제는 순흥안씨 제삼파 족보총목(順興安氏 第三派 族譜総目)이다. 선장(線裝)으로 크기는 가로 23.3㎝, 세로 36.3㎝이다. 관향(貫鄕)을 순흥(順興)으로 하는 순흥안씨는 호군공(護軍公, 정4품 장군)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한다. 안자미는 고려 희종 때 흥위위(興威衛, 중앙군인 이군육위 중 세번째 군단으로 좌우위)의 보승(保勝, 고려 중앙군인 육위와 지방군인 주현군의 군대조직) 별장(別將, 정7품 무관)을 지냈고, 뒤에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귀현(貴顯)으로 신호위(神虎衛, 고려 군제인 6위의 하나로 국토방위를 담당했음) 상호군(上護軍, 정3품 상장군)에 추봉됐다. 안자미의 셋째 아들 안영화(安永和)의 후손들을 삼파(三派)로 구분하는데, 삼파에서는 6세 문정공(文貞公), 안축이 그 명성을 떨쳤다.
이 자료는 제삼파 족보의 총목록집으로, 서희순(徐熹淳)의 서문과 안필성(安必聲)의 발문(跋文,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이 있다.
또한, 용인시의 순흥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두 종류의 족보(族譜) 순흥안씨 족보(順興安氏 族譜)는 1796년(정조 20년)에 간행된 것과 조선 말기에 간행된 것 두 종을 말한다. 1796년(정조 20년)에 간행된 순흥안씨 족보(族譜)는 17권 17책이며, 목활자본이다.
표제는 순흥안씨 족보(順興安氏 族譜)이다. 선장(線裝)으로, 크기는 가로 18㎝, 세로 26㎝이다.
조선 말기에 목활자로 간행된 순흥안씨 족보는 13권 13책으로 목활자본이다. 표제는 순흥안씨 족보(順興安氏 族譜)이다. 선장(線裝)이며, 크기는 가로 22㎝, 세로 33㎝이다.
1796년(정조 20년)에 간행된 순흥안씨 족보는 영조 때 간행된 을유보(乙酉譜)를 개수해 1796년(정조 20년) 목활자로 간행한 것으로, 안향의 16세손 안석임(安錫任)의 서문(序文)이 있다. 조선 말기에 목활자로 간행된 순흥안씨 족보도 내용은 위의 것과 같다.
순흥안씨의 세계(世系)와 조선 후기·말기의 족보 중수 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 순흥안씨양도공파묘군 (順興安氏良度公派墓群)
조선 전기의 개국공신인 순흥안씨 양도공(良度公) 안경공(安景恭)과 아들, 손자에 이르는 3대(代)의 묘가 안치돼 있는 곳이다. 묘역은 크게 오른쪽 2기와 왼쪽 3기로 구분되는데, 오른쪽에는 안경공과 손자 안숭선(安崇善)의 묘가 있고, 왼쪽에는 손자 안숭신(安崇信), 아들 안순(安純), 손자 안숭효(安崇孝)의 묘가 위에서 아래로 자리하고 있다.
묘소에는 봉분 3기,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 3기, 묘비 3기, 문·무관석 8기, 장명등(묘지 앞에 있는 돌로 만든 등) 2기 등이 있다.
이 중 안경공의 묘비는 높이 225㎝, 폭 56㎝ 규모로 윤유(尹惟)가 비문을 지었다. 안순의 묘비는 높이 226㎝, 폭 95.6㎝로 변계량(卞季良)이 지었고, 안숭선의 비는 높이 244㎝, 폭 88㎝ 규모로 비문은 성삼문(成三問)이 지었다. 묘와 석물들의 보존상태가 좋아 조선 전기 분묘 형식과 묘제의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90년 6월 18일 서울시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됐으며 순흥안씨양도공파종회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묘가 원형대로 잘 보존돼 있어 조선 전기 분묘의 형식을 이해할 수 있으며, 묘(墓) 앞에 세워진 인물상 등을 통해 묘의 변천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