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의 광복운동이 허사가 되다.②

‘후주 유선의 본 모습은 바보 멍텅구리’
이런 멍텅구리 같은 위인 후주에게 강유는 오로지 충의로써 다시 촉한을 찾자고 밀서를 보냈다. 그러나 정작 황제였고 주인이었고, 충성을 받는 자리에 있는 후주는 바보같이 히죽이 웃고 말았다. 가슴 아픈 일이다. 주군이 부하의 충정을 몰라주는 아픔이다. 이것은 현덕이 자식 훈육에 실패한 본보기라 해서 잘못이 아닐 것이다.
한편 종회는 강유와 모반할 계획을 물샐 틈 없이 짜고 있었다. 그 무렵 갑자기 사마소로부터 한 장의 편지가 날아왔다.

‘나는 종사도가 등애를 잡지 못할까 두려워서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장안으로 나와 둔병하고 있소. 머지않아 서로 만나기를 원하여 미리 통지하오.’
종회는 사마소의 글을 몇 번인가 되읽어 보고, 사마소의 능구렁이 같은 마음을 읽을 수 없어 답답해 하다가 홀로 중얼대기를
‘진공은 내 군사가 등애의 군사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넉넉히 아주 여유 있게 등애를 잡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친히 군사를 일으켜 장안으로 나왔단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꿍꿍이속이 있는 것이다. 그래 그렇다. 바로 나 종회를 의심하여 군사를 일으킨 것이 틀림없다.’

종회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결정하고 곧 강유를 불러 의논하기를
“진공이 장안에 나왔다 하는 구려. 이상하지 않소? 어찌하면 좋겠소.”
“이상하다 뿐이겠소. 임금이 신하를 의심하면 반드시 그 신하는 죽고 맙니다. 종사도께서는 등애의 꼴을 보지 못하십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소. 내 뜻은 이미 결정되었소. 일이 성공되면 천하를 다 차지할 것이고, 성공되지 못한다 해도 서촉으로 물러가 지킨다면 유비쯤은 될 것이오.”

“종사도는 더욱 신중하여 반드시 성공하십시오. 서촉으로 물러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요사이 위국의 곽태후가 승하하신 모양입니다. 사도께서는 곽태후의 유조라 거짓 선포하시고, 사마소가 전 황제를 시해한 죄상을 세상에 알리십시오. 사도의 지모와 용맹으로 넉넉히 중원천지를 장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기분 좋은 얘기요. 그렇다면 강백약이 나를 위해 선봉대장이 되어 주시겠소? 일이 성사된 후에는 부귀영화를 함께 합시다.”

“견마지로의 수고를 다하겠습니다. 다만 다른 장수들이 행여 불복할까 두렵습니다.”
“그건 염려 마시오. 내게 한 꾀가 있습니다. 내일이 마침 정월 대보름으로 원소가절입니다. 고궁에 크게 등촉을 밝히고 제장들을 청하여 연회를 붙이고 강백약을 선봉으로 삼는 일을 발표하겠소. 이때 복종치 않은 자가 있다면 모두 죽여 버릴 작정이오.”
“그것이야 말로 참으로 기발하고 기민한 수단입니다.”
강유는 크게 기뻐하며 종회의 수단을 칭찬했다.

다음날 종회는 제장들을 고궁으로 초대하여 연회를 성대히 열었다. 술이 너 댓 순배 돌자 종회는 돌연 술잔을 든 채 대성통곡했다. 제장들이 깜짝 놀라 먹던 술잔을 놓고 연유를 물으니 종회는 대답이 없다. 다만 울기만 하자 제장들이 종회 곁으로 다가가 이구동성으로 묻기를
“웬일이십니까?”
“통곡하는 까닭을 말해 주십시오. 웬일로 우십니까?”

“으흐흐흑 여러분은 모르실거요. 내가 왜서 우는지를 모르실 거요. 사실은 이렇습니다. 곽태후께서 승하하실 때 유조를 나에게 내리셨소. 사마소가 남궐에서 임금을 시해하여 대역부도를 범했다. 머지않아 사마소가 위국을 찬탈할 계획을 구체화할 것이다. 이런 불상사가 생기기전에 나로 하여금 사마소를 토멸하라 하시었소. 그대들은 나와 함께 대의를 지켜서 사마소를 토멸해야 할 것이오. 모두 다 이 일에 맹세하는 서명을 하시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함께 큰일을 성공합시다.”
제장들이 종회의 아닌 밤중 홍두깨격의 발언에 놀라, 서로를 얼굴만 바라보며 말을 하지 못하는데, 종회는 시퍼런 장검을 쑥 뽑아 들고 시위하기를

“내 영을 거스르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참하겠다!”
제장들은 그 시위가 두려워서 맹세하는 책자에 이름을 쓰고 수결을 놓았다.
종회는 서명한 책만으로는 믿지 못해 제장들을 궁중에 감금하고 엄하게 지키게 했다. 이런 비상사태를 살펴본 강유가 종회에게 고하기를
“내가 보기에 제장들이 승복하지 아니합니다. 갱 속에 쳐 넣고 처리해 버립시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소. 그래서 이미 궁중에 갱도를 만들고 심복을 배치해 두었소. 만약 제장들이 거역하면 다 죽여서 갱도에 넣고 묻어버릴 작정이오.”

이때 심복 구건이 곁에 있다가 종회의 말을 듣고 머리에 새겨 두었다가 딴전을 부렸다. 구건은 원래 호군 호열의 옛날 부하였다. 그때 호열이 궁중에 갇혀 있었다. 구건은 옛 상사인 호열에게 다가가 가만히 갱도에 쳐 넣고 죽일 것이라는 말을 흘려주었다. 호열은 구건의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내 아들 호연이 밖에 있네. 종회가 우리를 죽일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을 알려 줄 수 있겠나? 옛정을 생각해서 내 이런 형편을 아들에게 일러주게. 내 절박한 소식을 아들한테 알려만 주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

“은인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힘이 닿은 데까지 노력해 보겠습니다.”
구건이 호열에게 그리 약속하고 곧 종회를 찾아가 아뢰기를
“주군께서 제장들을 연금시켜서 모두가 식음을 하는데 불편이 많습니다. 한 사람 심복을 뽑아 음식을 가지고 왕래케 하는 것이 어떨지요?”

“딱히 그렇다면 내가 물과 밥을 운반하는 책임을 져라.”
“예, 주군의 분부대로 제가 식음을 전하는 책임을 지겠습니다.”
“헌데 구건은 내 말을 명심하여라. 나는 너를 믿고 중대한 일을 맡겼으니 이 일이 탄로 나면 그 누설의 책임은 너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종회는 구건을 믿어도 너무 깊이 믿으면서 그렇게 다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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