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저자 일연도 경주김문

삼국사기(三國史記)는 1145년(고려 인종 23년)경 김부식이 신라, 고구려, 백제 등 3국의 정치적인 흥망과 변천을 중심으로 편찬한 역사서이다.
인종의 명에 따라 김부식의 주도하에 11명이 참여해 편찬됐다. 이 책이 만들어진 12세기 전반의 상황은 고려 건국 후 200여 년이 흘렀고 문벌귀족문화가 절정기에 이르렀으며, 유교와 불교가 서로 어우러져 고려 왕조가 안정돼 있었다.
따라서 자기 역사의 확인 작업으로 전 시대의 역사정리가 필요했다.
조정에서는 거란을 물리친 후 자신감에 차 있었고 여진의 위협에 대한 강렬한 국가의식이 고조돼 있었다. 또 한편 문벌귀족간의 갈등과 대립이 심각했는데, 분열과 갈등을 국가가 망할 수 있는 원인으로 강조함으로써 현실비판의 뜻과 역사의 교훈을 후세에 알리려 했다.
현재 전하고 있는 이 책은 옥산서원 청분각에 보관돼 있는데 전 9책 50권이며, 종이의 질은 한지이다.
가로 22.4㎝, 세로 31.5㎝ 크기로 장마다 9행 18자로 짜여 있다. 이 책은 자체와 판식이 완연히 다른 3종의 판이 혼합돼 있다.

또한 후대에 편찬된 역사서의 모범이 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은 통일신라시대를 포함한 한국고대사를 연구함에 있어 일연의 ‘삼국유사’와 더불어 최고의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대장군파 파조 김순웅은 고려초에 대장군(大將軍, 종3품 무관)을 거쳐 상장군(上將軍, 정3품)을 역임했으며(또는 대장군, 상장군이 아니라 장군이었다고 함), 병판공파 파조 김덕재(金德載)는 김은열의 12세손으로, 조선 창업에 공을 세워 보좌공신에 책록됐고, 병조판서(兵曹判書, 정2품 국방장관)를 지냈다.
이밖에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김견명)도 경주김문이 배출한 인물이다.
김견명(1206~1289년, 호는 무극, 일연)은 경상북도 경산에서 출생했으며, 호는 목암 무극이고 고려시대의 학자이자 승려다.
서기 1227년 승과에 급제하고, 1237년 삼중대사 1259년 대선사, 1261년에 선월사의 주지를 지냈다. 1268년에는 대장경 낙성회를 조직해 맹주가 됐으며 1277년에는 운문사 주지가 됐고 1283년 국존으로 추대됐다. 1284년에는 인각사를 중건했으며, 궁궐에서 구산문도회를 개최했다. 그가 편찬한 ‘삼국유사’가 전한다.
<삼국유사>-김견명(승 일연)지음
삼국유사는 1281년(충렬왕 7년)에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 김견명)이 편찬한 사서(史書)로 목판본 5권 역사, 국어, 국문학, 민속 등에 걸쳐 삼국시대에 대한 귀중한 자료집이다. 단군조선에서 통일신라까지를 다루었는데 특히 불교에 관한 내용이 많다.
일연이 이 책의 저술을 위해 사료를 수집한 것은 청년시절부터였고, 그 원고의 집필은 대개 70대 후반으로부터 84세로 죽기까지 주로 만년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또한 한국고대미술의 주류인 불교미술연구를 위한 가장 오래된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 탑상편의 기사는 탑, 불상, 사원건축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싣고 있다.
이 책은 역사고고학의 대상이 되는 유물, 유적 특히 불교의 유물, 유적을 조사, 연구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문헌으로 꼽힌다.
또한 풍류도(風流道)를 수행하던 화랑과 낭도들에 관한 자료를 상당히 전해주고 있다. 이 자료들은 종교적이고 풍류적인 성격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삼국사기’ 화랑관계기사와는 다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저자 일연의 찬이 있어 그의 시문학이나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다.
‘삼국유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도 적지 않다. 이 책의 체재, 즉 권차(券次), 편목(篇目), 항목 등에는 약간의 혼란이 있다. 본문 또한 오자(誤字), 탈자(脫字), 궐자(厥字), 중문(重文), 혼효(混淆), 전도(顚倒) 등으로 인한 변화도 있다. 정밀한 교감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