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들리는 고즈넉한 산사에 무지개가 걸렸다. 풍경소리는 형체도 없이 넓은 경내를 가득 채우고, 비를 부르는 흐린 하늘 위에 걸린 무지개는 그 빛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지난 여름, 강화도에 있는‘강화 국제 선원’에서 찍은 사진이다.법정스님이 말씀하신 텅빈 충만이란 바로 이러한 것인가… 문득 비어있음과 가득 차 있음의 뜻이 알고, 배워온 것과 같지 않음을 생각한다. 비어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결락(缺落), 혹은 온전치 못함을 생각한다. 하지만 자동차 경적과 온갖 생활의 소음으로 가득한 거리에 바람 한줄기로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어찌 들릴 수 있으며,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탐욕 속에, 소박한 빛깔의 무지개가 어떻게 주목받을 수 있겠는가. 심신을 평온하게 하는 풍경소리나 무지개의 가슴 벅찬 아름다움은 비어있을 때, 채워지지 않을 때 만이 온전히 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들이다.법정스님의 텅빈충만에는 비움이 얼마만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물기 돌게 하는지를 말 해준다. 마른 빵을 씹는 것과 같은 퍽퍽한 인생에, 긴 길을 의지할 스승을 만났다는 안도를 갖게 한다. 텅빈 충만은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세상사를 옳곧게 보며, 소유한다는 것과 많이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삶의 짐인가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건네진 이 시대의 잠언이다.풍경소리와 무지개를 온전히 바라보며 살기를 소원하는 이들에게, 쥔 손을 펴게하고 바삐 걷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여 삶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소중한 책이다. 탄생은 영원하고, 텅 비어있음의 충만함은 늘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