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대전생명의전화 소장

‘빼빼로 데이’
11월 11일을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청춘이든 장사꾼이든 ‘빼빼로 데이’ 그 자체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렇게 한 날에 의미를 부여함에도 그 생각이 다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의미와 상관없이 이 말, 빼빼로 데이가 많은 이들의 귀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생명의전화’
대전에 생명의전화라는 이름으로 아파하며 소외된 우리 이웃의 친구로 함께 울며 함께 즐거워한 시간이 꽤 오래되었다. 세대가 바뀌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 생명의전화가 무엇인지 빼빼로 데이보다 생소하신 분이 계실지 모를 일이다.
독자와 나누고 싶은 생각 하나는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구매자, 연인, 내담자, 상담자. 그 이름은 달리하지만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 이름이다.
대전생명의전화는 상담소를 비롯하여 자살예방센터, 복지관, 어린이집, 중독관리센터, 사회복귀시설, 장애인주간보호센터, 북한이탈주민지역적응센터를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이다. 30년의 시간을 통해 많을 것을 보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깨닫게 되는 가장 의미 있는 한 말은 역시 ‘관계’가 아닐까 싶다.
빼빼로 데이가 상술에 바탕을 둔 말이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사실 하나는 ‘주고 싶고 받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으며 생명의전화는 한 사람 한 사람 서로에게 의미 있고 소중한 사람임을 알려나가고 있고 내담자 없는 상담자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궁극적으로 ‘이 땅에서 상담자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아름다운 세상’을 역설적이지만 꿈꾸어 보기도 한다.
이해관계 얽매이지 않은 순수한 선물을 주고받을 사람, 어려움과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을 때 생면부지의 상담자 말고 나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 그 사람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가까이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고 혹 이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없다는 확신은 할 수 없다. 그나마 생명의전화와 같은 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기관의 입장에서 볼 때 감사할 조건이다.
‘하루 40여명, OECD국가 중 1위, 남녀성비가 두 배정도, 시도자는 완성자의 20~40배’ 눈치 채셨으리라 생각한다. 자살에 관한 불명예스런 수식어들이다.
얼마 전 우리는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엄청난 사고를 겪었다. 온 국민이 함께 아파하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기를 기원하며 나름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다.
더 부끄러운 우리나라 현황은 1년에 1만 4000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고 그 중 청소년들도 400여 명이 넘게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 밖의 일이 아닌가 여겨질 만큼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수년 전 관련 법률이 제정되고 이제야 작은 움직임들이 가시화 되고 있지만 그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일선에 선 기관들만의 노파심일까?
대전생명의전화에서 생명을 살리고 아름답게 가꾸는 그 일을 감당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사례는 관계의 단절이나 파괴, 그리고 용서하지 못하는 굳은 마음이다.
사람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관계를 돈독하게 하며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 나서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바로 당신이어야 한다. 가래떡도 좋고 초콜릿막대도 좋다. 꼭 오늘이 아니어도 좋다. 마음을 나눌 그 누군가를 내가 먼저 찾아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중한 날이었으면 좋겠고, 주위에 소외되고 아파하는 이웃을 찾아 함께한다면 더 더욱 멋지고 의미 있는 아름다운 관계망도 그리 멀지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