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아이들 처음엔 같은 언어 …18개월 이후 어휘력 폭발적 증가
#. 생후 38개월 된 아이를 둔 박경애(33·대전 동구) 씨는 부쩍 말이 많아진 아이의 질문에 대답해주다가 하루를 보낸다. 아빠, 엄마를 입에서 떼고 난 뒤부턴 아이의 어휘력이 느는 속도에 깜짝 놀랐다. 주변 사물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의문도 갖기 시작했다. “엄마는 왜 할머니를 할머니라 부르지 않고 엄마라고 해?” 할머니에 대한 명칭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말들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울음을 통해 의사를 전달한다. 점차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욕구가 늘어나면서 울음과 표정, 몸짓 등으로 자기주장을 한다. 말은 못해도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분명히 알고 있다.
말을 배우기 전 어휘량이 적은 아이는 몸짓과 손짓으로 표현하는 베이비사인(baby sign)을 만들어 사용한다. 아기들도 쉽게 할 수 있는 동작들로 이뤄진 베이비사인은 아기마다 다르지만 아기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표현하는 대화도구다. 본능적인 사인으로 의사를 표현하다가 주변 사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인으로 발전한다. 이후 말을 하게 되면 베이비사인은 사라지고 음성언어로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
3개월 정도부터 아이는 옹알이를 시작하는데 전 세계 아이들은 처음엔 같은 소리를 내다가 점차 모국어에 가까운 소리를 내게 된다. 첫 단어를 말하고 주위 사물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하다가 어휘를 익히는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진다. 18개월 즈음엔 50단어쯤 알게되고 2살이 되면 2000단어를 구사한다. 3살 정도되면 어른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말을 하게 된다.
아이가 빠른 속도로 어휘를 습득하는 것은 사물을 단순화시켜 파악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물엔 하나의 이름만 있다고 생각하고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성인 남자를 ‘아빠’라고 통칭해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이들이 때가 되면 걸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나듯 아기는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장치를 갖고 태어난다. 단어만으로 의사를 표현하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 문법규칙도 찾아낸다. 하지만 이 언어습득 프로그램은 6~7세 이전에 상호 언어자극이 수반돼야 동작한다. 이 시기에 한국어로 자극을 받으면 한국어를 말하게 되고 영어로 자극을 받으면 영어를 말하게 된다. 어렸을 땐 모국어를 자연스럽게 익히지만 나이를 먹은 뒤에는 외국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다.
아이의 언어발달은 언어를 습득하는 시기에 언어자극을 얼마나 받느냐에 좌우된다. 언어자극은 부모와의 상호작용으로 비롯된다. 부모가 얼마나 다양한 어휘를 사용해 상호작용했는지가 아이의 어휘량에서 차이가 난다. 언어자극이 양보단 질의 영향이 큰 셈이다.
아이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말을 배우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복잡한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세상에 나와 자유롭게 소통하는 아이를 옆에서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일만 남았다.
유주경 기자 willowind@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