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 충남본부 부국장

지난해 꽤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본래 TV 시청을 즐기지 않는데 지난해에는 유독 멀리해 자의로 TV를 켠 일이 거의 없다. TV보는 시간을 줄이니 자연스럽게 책으로 손이 갔다. TV는 잠깐만 보겠다고 마음먹었다가도 채널을 돌리다 보면 몇 시간을 훌쩍 허비하게 만든다. 애초에 가까이 하지 않으면 엄청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로 지난해 TV 볼 시간을 활용해 자기계발을 한 시간이 솔찮다. 그중 책읽기를 많이 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고 보람이다.
꽤 여러 권의 책을 읽은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집필한 ‘싸가지 없는 진보’였다. 참 재미있게 읽었고 많은 부분을 동감했다. 그는 양대 정당의 축을 이루고 있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몇몇 진보정당 인사들의 경솔한 언행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충분히 애정이 묻어있는 비판이었다. 그는 진보세력들이 국민 다수의 일반적 정서와 동떨어진 가치를 지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내부 결속력이 약해 지속적으로 분열하고 대의를 상실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수를 날렸다.
비판의 대상이 된 인물들은 부정할지 몰라도 나는 그가 책을 통해 주장하는 바가 상당 부분 옳다고 생각했고 깊이 동감했다. 비단 진보세력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인들이 새겨들어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정치는 국민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의 아프고 가려운 곳을 치유해 주는 일이다. 하지만 그 평범한 진리를 외면하고 잘난 체에만 열중하는 정치인들이 참으로 많다. 강 교수는 그러한 사실을 조목조목 짚어내며 정치인들의 성찰을 주문했다. 진보를 지향하는 이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정치인을 향해 고언을 던졌다.
총선을 앞둔 정치시즌이 다가왔으니 정치 이야기 좀 해야겠다. 때가 때인 만큼 이곳저곳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정치 관련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누구랄 것 없이 총선을 앞두고 출마가 예상되는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가 이어진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다수의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싸가지’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강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을 읽어서인지 유독 정치인들의 싸가지에 대해 오가는 대화가 쏙쏙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정말 많은 이들이 정치인의 싸가지에 주목하고 있음을 절감했다.
유교문화권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대부분의 국민들 정서에 ‘군신유의(君臣有義)’ 나 ‘장유유서(長幼有序)’ 등의 정서가 깊이 박혀있다. 정쟁관계에 있는 상대를 공격할 때도 예의를 갖추고 품격 있는 말로 점잖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표심을 호소할 때도 겸손하고 방정한 자세를 요구한다. 그러나 정치현실은 다수 국민들의 정서와 다소 동떨어져 있다. 특히 방어적인 집권여당보다 공세적일 수밖에 없는 야당의 경우, 자극적인 말과 거침없는 행동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무례하다 싶은 공격이 단행될 때 동조하고 박수치는 국민들도 많겠지만 혀를 차고 등을 돌리는 국민이 더 많아 보인다. 강준만 교수는 야당이 만년 야당에 머물 수 없는 이유를 여기서 찾고 있다.
야당을 지목해 말하고 싶지는 않다.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싸가지에 주목하고 있다. 충청권 정치인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를 대충 알고 있다. 누가 싸가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다. 나뿐 아니라 대개의 유권자들은 어느 정치인이 싸가지 없는지 잘 알고 있다. 싸가지는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을 평가하는 첫 번째 항목이다. 나 역시도 표심을 평가받으려 하는 이들을 가늠할 때 유능함과 무능함에 앞서 싸가지를 살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그 같은 사실을 잘 모른다. 겸손을 모르고 독설로 정치적 승부를 던지는 이들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표심은 언제나 싸가지에 주목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독특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