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공의 71.4% "원하는 때 임신 못 해"…직장 내 성희롱도 여전

간호직군(간호사, 간호조무사)과 전공의 등 여성보건인력 종사자들이 심각한 인권침해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5∼10월 전국 12개 병원의 간호직군 및 전공의 등 여성보건인력 1130명을 대상으로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간호직군 39.5%, 여성전공의 71.4%가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자유로운 임신을 결정할 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내용을 보면 여성전공의의 경우 출산 전후 휴가는 79.7%가 사용했다고 응답했으나, 육아휴직은 절반 정도인 52.6%만 사용했다고 답했다. 또 일부 전공의의 경우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기준법 제70조제2항을 보면 사용자는 임산부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 및 휴일에 근로시키지 못한다. 이를 위반한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런데도 여성전공의의 경우 임신 경험이 있는 대상자 중 77.4%가 초과 근로를 했다. 간호직군의 경우 38.4%가 임신 중에도 야간 근로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모성보호와 관련한 현행 제도가 병원 현장에선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직장 내 성희롱에 관한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피해자는 대부분 간호사 또는 간호보조 인력이었고, 가해자의 경우 대표적으론 병원장이었으며, 의사와 상급 행정직원에 의한 성희롱도 적지 않았다.

여전히 병원 특유의 위계질서 속에서 성희롱이 발생해도 은폐되기 쉬운 상황으로, 드러나지 않은 피해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는 병원 내 성희롱 예방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고충처리 절차 또한 불분명하다. 더욱이 신고를 받은 이후 조치가 미흡해 신고자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이 더 큰 실정이다. 위계적이고 폐쇄된 병원 조직 내에서 폭언을 비롯해 폭행, 괴롭힘 등의 인권침해 사건이 많이 발생하지만, 이에 대해 마땅한 구제 절차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의료기관 내 폭력과 성희롱 등 예방관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경우 의료서비스 질적 저하로 나타날 수 있다”라며 “모성과 인권보호를 위한 법들이 존재하지만 의료기관은 문화적·제도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유명무실한 법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 적용될 수 있는 법안들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정관묵 기자 dhc@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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