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美 법원에 日王, 아베 총리 상대로 소송 제기
박유하 세종대 교수 저서 ‘제국의 위안부’ 민사소송 재판 증인으로 활동

유희남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 할머니가 10일 오전 8시 23분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다. 빈소가 차려진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구원(舊怨)을 풀지 못한 또 한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한(恨) 많은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이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40명에 불과하다.

경기 광주에 자리한 나눔의집에 거주하던 충남 아산 출신의 유희남 할머니가 10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나눔의집에 따르면 1928년 아산시 선장면에서 태어난 유 할머니는 15살인 1943년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1년간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했다. 오사카에서 싱가포르로 이동하던 중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자 오사카 주민의 도움으로 귀국했고, 8·15 광복 이후 보따리 장사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위안부 피해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불면증과 심장질환을 앓은 유 할머니는 2009년 폐암 판정을 받고도, 2012년 나눔의집에 입소해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고,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지난해 7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연방법원에 인도(人道)에 반한 죄와 명예훼손으로 일왕과 아베 총리, 산케이신문, 미쓰비시사(三菱社)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14~2015년에는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 민사소송 재판에 수차례 증인으로 출석했다. 작년 12월에는 피해자 의사나 동의가 없는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안을 인정할 수 없다며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주저하지 않았다.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여온 유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역사의 유네스코(UNESCO) 등록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는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12일 오전 8시, 장지는 나눔의집 추모공원이다.

한편, 유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0명(국내 38명, 국외 2명)으로 줄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