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무형문화재 악기장 표태선 씨

열아홉 살에 시작해 30년 넘게 ‘전통악기 만들기’라는 외길을 걸어온 대전시무형문화재 제18호인 악기장 (樂器匠) 표태선 씨를 만났다. 그는 대표적으로 가야금은 물론 거문고, 아쟁, 해금, 양금, 철가야금 등 현악기는 모두 만든다. 더불어 지금은 연주되지 않는 와공후, 소공후 등도 재현해 놓았다. 현악기는 다른 국악기들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과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고 특히 그의 가야금이 탄생하는 과정은 길고도 복잡하다. 오동나무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2-3년간의 자연 건조, 인두질, 다양한 장식과 마지막으로 여러줄의 명주실을 꼬아서 현을 걸고 음을 맞추면 비로소 공정이 마무리된다. 그는 “혼을 불어넣고 자식을 대하듯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전통악기가 태어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전통악기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단순했다. 우연히 앞집에서 들려오는 가야금 소리에 반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악기를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빈손으로 서울로 올라가 주린 배를 움켜쥐면서 전통 악기 만드는 법을 배웠다. 1985년 대전에 정착한 표 씨는 명인국악기를 운영하면서 대전·충남에서는 유일하게 전통 현악기의 맥을 잇고 있다. 그의 작업장은 대전지역 음악인과 국악인은 물론 멀리 타지역에서도 전통 현악기를 보기 위해 줄을 잇는다. 표 씨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악기를 만드는 것이고, 나무에게는 또 다른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기에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며 “좋은 나무를 고르는 것 못지않게 세상 하나밖에 없는 가야금에서 최고의 소리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수십 년을 사용해도 소리와 모양이 변치 않는다는 칭찬을 들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늘 넉넉하지 못하면서 수십 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우리 악기를 만드는 것은 사명감 때문”이라며 “좋은 악기를 만들려는 일념으로 작업에 몰입하다보면 즐거움과 보람도 커 일상의 어려움은 잊게 된다”고 말했다. 악기를 어루만지며 자식을 대하듯 정성을 다하는 악기장 표씨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서 국악기가 더욱 빛을 발휘하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국악기의 맥을 잊기 위해 제자를 키우고 더 많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표씨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가야금이란우리나라 고유의 대표적 현악기의 하나.오동나무로 된 장방형의 공명통 위에 굵기가 다른 12줄의 명주실을 매고, 기러기발 모양의 안족으로 줄을 받쳐 세운다. 공명통 위에 줄을 거는 받침목 즉, 현침(絃枕)을 붙이고 그 옆에 뚫린 12개의 구멍에 12개의 줄을 꿰고 공명통 후면에서 돌괘로 줄을 고정시킨다. 줄의 다른 끝은 부들이라고 하는 밧줄에 매어 현침의 반대쪽에 있는 양이두(羊耳頭)에 묶어 고정시킨다. 왼손으로 줄을 눌러 농현을 하고 오른손으로 뜯거나 밀어서 소리를 낸다.가야금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가야국의 가실왕(嘉實王)이 당나라 악기를 보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 우륵(于勒)에 의하여 가야금 음악이 발전되었다. 가야국이 망하자 우륵은 가야금을 들고 신라에 망명하게 되었다. 신라의 진흥왕은 그를 국원(國原 : 지금의 충주)에 살게 하고 계고(階古)에게 가야금, 법지(法知)에게 노래, 만덕(萬德)에게 춤을 가르치게 했다. 그 이후 가야금은 신라의 궁중에서 대악(大樂)으로 채택되어 연주되었고, 신라의 대표적인 악기가 되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일본에도 전하여져 시라기고도라는 이름으로 나라(奈良)의 정창원에서 보존되어 내려오기도 한다. 이렇게 전래된 가야금을 법금 혹은 풍류가야금이라고 하고 주로 아악과 정악의 합주에 사용한다. 법금보다 작은 산조가야금은 조선 말에 등장하는데, 주로 산조·가야금 병창·민요와 같은 민속악에 독주 또는 합주로 사용된다. 최근에는 17현·18현·23현·25현 가야금이 등장하였는데, 이 가야금들은 주로 창작곡을 연주하는데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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