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태후가 숨을 거두다①

한편 조나라를 멸망시킨 진왕은 그날 밤 한단에서 대 연회를 베풀었다. 그곳에는 전쟁에 참가한 왕전을 비롯한 장수들이 빠짐없이 초청되었다. 그들의 수발은 조나라 궁녀들이 맡았다. 조왕의 후실들은 모두 진왕의 인근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앉아 그의 시중을 들었다. 굴욕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진왕이 잔을 높이 들고 말했다.

“진나라 장졸들이여. 지난 5백여 년간 숱한 백성들이 살육의 도가니에서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이 목숨을 연명하며 살았소. 그들을 고난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우리는 분연히 일어섰소. 그리고 우리는 한나라에 이어 조나라를 거둠으로써 천하통일의 대업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소. 진나라 장졸들이여. 더욱 분발하여 만백성의 아픔에 종지부를 찍도록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하오. 오늘은 마음껏 마시고 취할 계집이 있다면 누구라도 허락하겠소. 과인의 옆에 앉아 있는 조왕의 후실들도 예외가 아니오. 진나라 만만세.”

진왕이 만세를 주창하자 왕전을 비롯한 장수들이 진나라 만만세를 복창했다.

이어 장수들은 앞을 다투어 “진왕 만만세”도 빼놓지 않았다.

이들이 연회를 여는 동안 조나라 궁녀들은 서로 곁눈질을 하며 시중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시중을 거부하거나 장수의 마음을 상하게 한 궁녀는 즉시 연회장 밖으로 끌려 나가 목이 베였다.

살벌한 상황이었으므로 누구도 진왕과 장수들의 청을 거역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그날 밤 궁 곳곳에서는 궁녀들의 메마른 숨소리와 비명이 뒤엉켜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시켰다.

진왕은 장수 왕전에게 특별히 조왕이 가장 아끼던 영빈을 하사했다.

흙먼지가 날리는 전장에서 피비린내와 땀 냄새만을 맡으며 살아온 왕전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큰 선물이었다.

취기가 오른 왕전은 두 다리를 쭉 뻗고 영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여인을 올려다 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이 앉은 여인은 조왕의 사랑을 한몸에 받을 수밖에 없는 자태를 하고 있었다. 백분처럼 맑은 얼굴에는 화색이 감돌았고 소박하게 차려입은 옷에서는 화분 냄새가 은은히 풍겨났다.

왕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촉촉하게 물기가 감도는 고운 손이 거친 손에 만져졌다.

“오늘부터는 내가 그대의 임자가 되느니라. 알겠느냐?”

“………….”

영빈은 여전히 고개를 떨어뜨리고 앉아 말이 없었다. 눈가가 눅눅하게 젖어들었다.

“슬퍼하지 마라. 이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을. 누구를 탓하겠느냐.”

왕전은 거친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준 다음 천천히 품었다.

영빈은 훌쩍거리면서도 거칠고 더 넓은 왕전의 가슴에 쏟아져 내렸다.

왕전은 자신의 덩치에 비해 한주먹밖에 안 되는 영빈을 침상에 눕히고 이내 무자비하게 그녀를 점령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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