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영 심리학 박사

며칠 전, 날이 선 모조지에 손가락을 스쳤다. 손가락 끝이 살짝 스쳐 생긴 실 같은 상처에도 신경 쓰이는 나로선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증후를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 멀쩡한 다리나 성기를 잘라내고 싶어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외과의사에게 멀쩡한 팔과 다리를 절단해 달라고 해 난처하게 한다. 거절을 당하면 드물지만 도끼나 부엌칼 등으로 스스로 절단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심리상담가였던 수지 오바크가 상담한 사례에는 신체 일부를 절단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50년 동안 속으로는 건강한 두 다리의 아래를 잘라내고 싶어 안달하는 앤드루가 그중 하나다. 그는 여섯 아이를 키우며 평범하게 사는 아빠이기도 하다. 대화치료로 절단욕망의 심층적 원인을 깊이 이해하는 순간 수술을 원치 않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심층적 대화 후에도 변화되지 않았다. 결국 의사는 절단수술이 모든 치료법 중 가장 인도적인 길이라고 결론 내리고 집도했다. 수술 후 앤드루는 비로소 “온전한 자아를 되찾았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음경을 잘라낼 궁리에 빠진 남자들도 있다. 자신이 잘못된 몸에 갇혀있다고 믿는 사람 중에는 남성 비율이 높다. 보통 사람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음경 절단을 감행해야 할 만큼 절실하다. 미카엘라는 음경을 갖고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느꼈다. 배우이자 작가가 된 알레시아 브레바드는 자신의 성기에 대해 “창피한 것을 넘어 가끔은 생명에 위협이 된다고 느껴지는 선천적 결함”이라고 말했다. 그는 20대였던 1960년대에 수술을 통해 ‘그녀’가 됐다. 성기 절제는 그녀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위안을 줬다.
도대체 왜 그들은 멀쩡한 다리나 음경을 잘라내려 하는 것일까? 특히 음경 절단을 원하는 사람들은 왜 끔찍한 ‘궁형(宮刑)’을 자청하는 것일까? 피붙이·살붙이를 공포와 무기력감으로 몰아넣는데다가 긴 시간과 큰 돈을 들이면서까지 말이다.
자신의 몸에서 특정부위가 부적절하거나 너무 많다고 믿는 증상을 ‘신체통합장애’라고 한다. 이것은 ‘신체이형장애’와 혼동되기도 한다. 신체이형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외모에 별문제가 없는데도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침투적 사고로 괴로워한다. 이들은 자신의 모습이 남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킨다고 믿으며, 수시로 거울을 보며 외모가 정상으로 보이는지 확인한다. 뇌에는 몸의 여러 부위에 대응하는 부위가 있는데 몸의 일부가 위치경로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몸의 지도가 불완전하게 나타나는 신체절단증후군이 있는 사람도 그것을 느끼고 사용할 수는 있다. 수족이 뇌의 위치경로에는 없지만 감각영역과 운동영역에는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손과 발을 쓰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게 속해있지 않다는 기괴한 느낌에 시달린다. 내 몸이 아닌 듯 느껴지는 수족이나 성기는 통합된 온전한 자아를 갖는데 방해가 되고, ‘불쾌한 존재감’과 이물감을 끊임없이 야기함으로써 당사자에게 그것을 잘라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아기는 출생하는 순간 의사나 산파로부터 성별을 확인 또는 공인받는다. 아들 아니면 딸이라고. 여기에는 별다른 상상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성(性)이분법’이라는 우리의 굳건한 상식적 토대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남자와 여자라는 구획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간성(間性)’이나 ‘반음양증’이라고 불리며, 여러 비하적 명칭으로 폄하되는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성 정체성에서 빚어지는 몸과 심리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부조화는 이들을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간다.
간성이라는 집단이 실존한다는 사실은 성이분법에 익숙한 성다수자를 불편하고 두렵게 한다. 우리의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익숙한 성이분법의 세계를 흔드는 그들 모두를 도외시하거나 비난하는 것이다. 소수자이자 피해자인 그들을 손가락질함으로써 우리는 익숙한 질서의 세계에 머물 수 있고, 안온한 심리적 통제감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자를 비난하는 자신이 다수자라는 양지에 속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안도하는 사이에 정작 이해와 수용이 필요한 그들은 이차적 피해라는 화살 탓에 피 흘리게 된다. 절단욕망을, 신체통합장애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간성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제아무리 부인한다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라는 범주 사이에 기이한 절단욕망을 품고 서성이는 존재가 과거로부터 이 시간까지 우리와 함께, 우리 옆에 어쩌면 자신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