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가정은 사회 변화로 생긴 새로운 가족유형"

 "아이를 스스로 키우겠다고 결정했고 지금 후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미혼모 자녀라는 편견 때문에 상처받을까 매우 걱정됩니다. 이상한 가족이 아닌 다양한 가족의 한 유형으로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스물 여섯의 나이에 힘겹지만 행복해하며 7살 딸과 5살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 최사랑(가명)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대다수 미혼모는 따가운 주변 시선과 경제난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배려와 지원은 매우 부실하다. 미혼모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집단 괴롭힘이나 모욕을 당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미혼모도 당당한 사회 구성원인 만큼 주변의 인식 개선이 이뤄지고 지자체와 복지단체 등의 지원 프로그램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원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평범한 자녀로 키우겠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으로 최씨는 오빠와 함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엄마 없는 아이라는 놀림이 싫어서 학교에 잘 가지 않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외톨이였다.

세상을 원망했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 가출해 강원도로 갔다.

식당과 편의점에서 일하다 정이 든 한 남자와 사귀다 덜컥 아기가 생겨 고단한 삶이 시작됐다. 남자는 "책임질 능력도 없고 내 아기인지도 알 수 없다"는 야속하고도 무책임한 말만 남긴 채 곁을 떠났다.

생계를 위해 나섰던 아르바이트에서 두 번째 남자와 만나 또 아이가 생겼다. 이번만큼은 과거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지만 역시 버림받는 처지가 됐다.

전북 군산에 사는 최씨는 "제가 어릴 적 엄마 없이 커서인지 아이들을 꼭 낳고 싶었고 엄마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었다"며 스스로 미혼모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차갑고 따가운 일반인 시선이다. "대형마트 같은데 가면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저 스스로 움츠러든다"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전주에서 장애인과 미혼모를 돕는 김소망(가명·44)씨도 미혼모다.

어릴 적 집안 사정으로 친척 집을 전전했지만,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던 그였다. 그러나 그녀는 직장에서 알게 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다. 너무 무서웠고 힘들었다. 자살까지도 생각했었다.

낙태를 고민하던 그는 임신을 못 해 애태우는 한 여성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고 나서 출산을 결심했다.

김씨는 "주위의 낙태 권유보다 모성애와 생명에 대한 사랑이 훨씬 컸고 그 결정은 옳았다"고 말한다.

그녀도 보통의 미혼모처럼 주변의 냉대와 사회적 편견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게 살아왔다.

이제는 그 아픔을 극복하고 자신과 같이 어려움을 겪는 미혼모와 홀몸노인, 장애인을 돕는 봉사를 한다.

혹독한 어린 시절과 미혼모 생활을 통해 작은 도움이 얼마나 자신에게 큰 힘이 됐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 "자녀에 피해갈까"…드러내기 꺼리는 미혼모들
미혼모는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가져 어머니가 되거나 아이를 입양한 여성이다. 대부분의 미혼모는 전자에 속한다.

국가통계 포털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으로 전국의 미혼모는 2만4천487명에 달한다.

그러나 존재를 드러내기 꺼리는 미혼모의 특성을 고려할 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혼모를 돌보는 군산지역 한 사회복지사는 "미혼모들은 과거 (대부분 나쁜) 기억을 들추는 것을 싫어하는 데다, 가족·친지와 주변은 물론 특히 자녀에게 피해가 될까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부모 가정 등록자를 찾아가 면담해야 미혼모인지 알 수 있다"며 여러 부정적인 이유로 미혼모이면서도 등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미혼모를 돌보거나 지원하는 단체들은 미혼모 가운데 결손가정 출신이 적지 않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 부재와 불우한 가정환경 등으로 가출을 하거나 경제활동을 하다가 한순간 실수나 성폭행을 당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 엄마의 부재에 따른 보상심리가 더해져 어려운 여건에도 "아이를 낳아 엄마 역할을 다하겠다"며 끝까지 출산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 사회 도움에 인식 개선 절실…"가족의 한 유형, 당당한 사회 구성원"
그러나 미혼모 대부분은 출산 후 곱지 않은 주변 시선에다 빈곤까지 겹쳐 고통을 겪는다. 기본적인 생활과 아이 양육을 위해서는 경제활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일자리를 구해도 육아 때문에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어렵고 특히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실직, 집단 괴롭힘, 모욕을 당하기 일쑤다.

세살과 한 살배기를 둔 한 미혼모(25)는 "'가치관이나 행동이 바르지 않은 여자'라는 수군거림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생활한다"며 "한국사회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 사회의 미혼모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아이를 키우는 저소득층 미혼모가 받는 돈은 기초생활보장비와 월 7만원의 양육비 등을 합쳐봐야 매월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

복지시설 등에서 생필품과 유아용품을 지원받지 않으면 생활은 더욱 쪼들리기 마련이다.

7살 딸과 5살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 최사랑(26)씨는 "한 달에 셋이 생활하려면 최소한 150만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작은 공장에 다닌다"다고 말했다.

처음엔 미혼모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 문제였는데 이제는 경제적인 문제가 삶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그는 말한다.

최씨는 "미혼모자 입소시설도 있다지만 아이들을 '평범하게' 키우고 싶어 부족함 속에서도 보통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며 정부나 지자체의 더 많은 관심을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미혼모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미혼모자는 '가정의 한 유형'으로 받아주는 사회적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윤진주 호원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21일 "미혼모 가정은 이상한 가족이 아닌 사회가 변화하면서 생긴 '다양한 가족유형의 하나'"라며 미혼모 스스로 자아의식을 높이고 사회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도록 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 또한 미혼모는 취약계층이면서 경제적 약자인 만큼 지자체, 복지단체가 연계해 경제적인 지원을 확대하고 취업 프로그램, 육아 지원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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