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운 겨울이 가면 봄이 오기 마련인데 화훼업계의 겨울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 이후 화훼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가운데 2월 졸업식에서 목화꽃 선물이 인기를 끌면서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지난 달 종영된 한 드라마에서 남 주인공이 졸업하는 여 주인공에게 준 목화꽃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부터다. 업계는 이 같은 봄바람이 단타가 아니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걱정섞어 입을 모았다.
◆“팔려고 해도 물량이 없어요”
“꽃 사가세요. 싸게 드립니다.”
지난 10일 학위수여식이 열린 대전 모 대학을 찾았다. 아침부터 캠퍼스엔 많은 노점들이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손길이 분주하던 한 상인은 “요즘 불황이라 가져온 꽃을 다 팔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미심쩍어 하면서 “목화 꽃이 잘나간다기에 없는 물량도 간신히 구해서 가져와 봤는데…”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학교를 방문한 축하객들의 손엔 여느 때처럼 꽃 한 다발이 들려 있었고, 유행을 반영한 듯 목화꽃을 들고 있는 이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학위수여식이 끝나자 캠퍼스 곳곳에선 기념촬영을 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속에 목화꽃을 들고 지인과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한 청년이 보였다. 조민제(28·세종시) 씨는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요즘 졸업식에 목화꽃을 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며 “꽃말이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부모님 뒷바라지 덕분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꽃을 선물 받아 기분이 좋다”고 행복해했다.
드라마의 유행으로 목화꽃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격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5000원 대에서 판매되던 꽃은 현재 10송이에 2만 5000원, 한 다발은 최고 1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비싸졌다. 한 상인은 “현재 목화꽃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물건을 가져오기 어렵다”며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어 대전지역 대학 졸업식은 이제 시작되는데 제 때 공급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인기는 반짝, 불황은 계속
목화꽃 유행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화훼업계가 웃을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지난해 9월 28일 김영란법 시행 이후 꽃이나 화환을 주고받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 소비위축이 계속되는 탓이다. 꽃집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꽃이나 화환을 선물했다가 부담을 느껴 다시 되돌려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화훼업계 불황은 꽃 도·소매상에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대전 둔산동 이마트 인근에 자리 잡은 화훼 도·소매시장은 졸업시즌임에도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건물 지하에서 도매상을 하는 허영일(46) 씨는 “화훼업 불황은 말할 필요도 없고, 김영란법에 일명 3·5·10(밥값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 10만 원) 원칙이 발목을 잡고 있어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단가를 조정하지 않는 한 불황은 계속 될 것”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같은 건물 1층에서 소매업을 하는 김영순 씨도 “저희 점포는 도소매 건물이 같이 있어서 근근히 버티고 있지만 바깥에 홀로 있는 꽃집들은 폐점하는 곳도 생기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한국화훼협회 충남지부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꽃이나 화환을 주는 것이 뇌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 이미지 회복도 중요하지만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화훼산업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글·사진=이준섭 수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