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신촌동 (5구간) 벚꽃명소

연분홍빛 커튼 사이 ... 벚꽃 그대 

토머스 엘리엇은 이렇게 얘기했다. ‘4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이 해주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마른 뿌리로 작은 생명을 길러 줬다.’ 

하지만 4월은 아름답더라는 뜻의 반어법일 수도 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거품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인데 그리스어로 거품을 뜻하는 Aphros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4월을 뜻하는 영어 April은 Aphros에서 파생됐다. 

그래서 4월은 아프로디테의 달이다.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는 4월이 미의 여신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하다. 대청호의 4월도 미의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대청호의 4월

충청도의 양반처럼 느긋하게 걸어온 4월의 기운이 북상하고 있다. 항상 바쁜 도시 속에 삶을 지내다 보면 무심코 핀 꽃 한 송이까지 세심하게 챙겨보기 힘들다. 

그런 무관심 속에서도 꽃은 어렵사리 꽃망울을 틔우고 어떻게든 생존하며 결국 만개해 봄이 왔음을 알린다. 나름의 치열한 삶을 살다 봄이란 짧은 기간에 모든 걸 산화하고 져버린다. 그 찰나의 삶 속에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꽃은 화려하게 피나 보다. 

벚꽃이 그렇다. 정말 화려하지만 그 꽃을 좋은 날씨 속에 보는 게 너무 힘들다. 하지만 악재 속에서도 아름답게 만발한, 혹은 치열하게 만발하려는 벚꽃의 아름다움이 대청호란 병풍을 만난 순간은 너무나 우아했다. 그렇게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인 방축골 앞에 섰다.

방축골이란 지명은 사실 전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방축골은 방축과 골의 합성어다. 방축은 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둑인 방죽에서 유래했다. 

골은 골짜기다. 즉 방축골은 방죽이 있는 골짜기로 이해하면 된다. 혹은 골짜기에 물이 방죽처럼 많아서 붙어진 이름으로 설명해도 된다.
 

대청호를 오른쪽에 끼고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뒤 입구에 서면 곧바로 벚꽃터널이 반긴다. 온통 분홍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내 새끼가 태어나면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은 그런 마음일까. 

아니면 첫날밤을 지내러 온 색시가 곤지를 찍은 게 그리 아름다운지 멍하니 쳐다보는 총각의 마음일까. 그렇게도 눈의 초점을 잃은 채 한동안 벚꽃을 바라본다. 비록 눈의 초점은 흐려져도 온 세상이 분홍빛이다. 

 

#.  둘이 걸어요

반짝반짝 흔들리는 꽃 그늘 아래
대청호 벚꽃 환상의 콜라보 연출
흩날리는 분홍 꽃비 이번주 절정
연인 손잡고 같이 걷고 싶은 그 곳

 

극락이나 천국, 아니면 또 다른 이상향이 있다면 마치 이런 모습이겠다. 모든 아름다움이 집약돼 있는 벚꽃 옆엔 그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을 질투하듯 개나리도 한껏 노란 분을 바르고 열심히 자랑질이다. 

여자친구의 애교 있는 질투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듯 또 한동안 노란 개나리에 시선을 집중한다. 하늘엔 벚꽃이, 땅엔 개나리가 각자의 색을 자랑한다. 분홍과 노랑의 하모니가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본격적으로 벚꽃터널에 들어서면 왕벌의 비행이 펼쳐진다. 벌들은 벚꽃의 매혹적인 모습과 향에 취해 떨어질까 열심히 날갯짓에 한창이다. 

비록 그 날갯짓이 귀에 거슬릴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비행으로 인한 불협화음마저 천상의 아리아처럼 느껴지게 벚꽃과 개나리는 그렇게도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눈은 벚꽃과 개나리 때문에 호강하고 귀는 왕벌의 날갯짓에 행복해진다. 꽃 냄새에 코는 즐겁다. 그리고 대청호의 숨결과 태양의 햇살이 피부를 자극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입엔 흥얼거림이 나온다. 오감이 행복해진다. 왜 사람에게 다섯 개 기관밖에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이다. 

그렇게 방축골의 벚꽃터널을 천천히 음미한다. 끝이 오지 않길 바라며 100m 남짓인 벚꽃터널의 모든 걸 즐긴다. 

방축골 벚꽃터널 끝에 서면 제법 아쉬움이 진할 줄 알았지만 햇살을 한껏 마신 대청호가 금빛으로 반짝이며 아쉬움을 달래며 반긴다.

 

회인선 벚꽃터널. 동구제공

◆분홍의 커튼 속 … 국내 최장의 벚꽃나무 가로수길

벚꽃터널을 나와 지방도 571호선으로 향하면 국내에서 가장 긴 벚꽃길이 나온다. 

대전 동구 신상동에서 충북 보은 회남면으로 이어지는 왕벚나무 가로수길 회인선으로 1960년대에 조성된 국립수목원이 선정한 아름다운 벚꽃길 20선에 뽑힌 바 있다. 26.6㎞에 달하는 만큼 분홍의 커튼 속을 마음껏 헤집고 다닐 수 있다.

차를 타고 벚꽃을 즐기며 천천히 충북 보은 방향으로 운전대를 잡으면 얼마 가지 않아 벚꽃의 오로라가 펼쳐진다. 거대한 분홍의 커튼 때문에 하늘의 구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벚꽃과 벚꽃 사이의 틈을 놓치지 않은 태양의 신 아폴론의 화살이 쏟아지면 햇살과 함께한 벚꽃이 더욱 눈부시다. 

 

#. 오빠차 타고 아빠차 타고

대전 동구 신상동~충북 보은 회남면
국내 최장 벚나무 가로수길 장관
6.6 km 낭만 드라이브 깊은 여운
봄바람 휘날리며 이 봄 만끽하시길

 

사방팔방 온갖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해 자연스럽게 가슴속 죽어있던 연애세포까지 살아날 것 같은 기분이다. 외나무에서 만난 원수라도 이곳에서라면 사랑어린 눈빛으로 한 번쯤은 쳐다보지 않을까. 

또 다른 벚꽃 가로수길은 시원하게 직선으로 뻗어 저 멀리까지 분홍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분홍빛의 향연에 몸을 맡기고자 잠시 운전대를 놓고 멈춘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벚꽃의 향과 분홍빛 속으로 뛰어든다. 비록 신록의 산림욕만큼은 아니겠지만 포근한 엄마 같은 봄내음에 더욱더 그 속을 파고들어 본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달이 동쪽에서 천천히 활동을 시작하자 벚꽃 가로수길엔 또다시 한 차례 변화가 찾아온다. 인근에서 부는 대청호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벚꽃 향을 안고 오기 시작한다. 

익숙하진 않지만 즐거운 향에 코가 간질해 갑작스러운 날숨이 나오지만 잠시 어떻게든 참아본다. 눈을 감는 그 짧은 순간 살다가는 그네들의 아름다움을 시야에 어떻게든 더 그리고 싶어서다. 

흩날리는 벚꽃 잎도 종전보다 많아지면서 머리엔 분홍의 아름다운 머리장식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짧디짧게 산화하는 벚꽃의 아름다움, 그리고 대청호가 전달하는 그 향을 더욱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켜 본다. 죽음을 향해 가는 건 알면서도 열심히 자신의 꽃을 짧게나마 피우는 벚꽃을 올해 또 보기 힘들 걸 알기에.

총평★★★★☆

대청호오백리길에 벚꽃이 피는 곳은 많다. 그럼에도 5구간의 방축골을 추천하는 이유는 벚꽃터널 때문이다. 

이 하나로 방축골은 반드시 와야 하고 출사로도 매우 유명한 곳이다. 특히 벚꽃터널은 바로 옆에 개나리도 만개한 데다 대청호까지 있어 시야가 시원하다. 

국내 최장의 왕벚나무 가로수길도 출사로 유명한 만큼 반드시 들리자. 대청호는 대전과 다르게 벚꽃이 늦게 피는 편이므로 이번 주 대청호의 벚꽃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 꼭 걸어보자. 

인근 유명한 식당도 있고 카페도 있어 먹거리도 풍성하다. 다만 아쉬운 건 출사를 나온 사람들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들이다. 또 벚꽃터널보다 높은 대지에 있는 주택이 조망권을 위해 일부 벚꽃나무를 자른 것도 옥에 티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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