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같은 시간 같은 추억을 다르게 회상하고 살아간다. 어렸을 적 내가 기억하는 내 성격과 동창들이 발견했던 나의 색다른 과거의 모습을 조우하기도 한다. 헤어진 연인과의 대화에선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그 당시의 느낌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기억이라는 것은 사실의 종합이 아니라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한, 주관적 감정의 덩어리이지 않을까? 이번 주말 추천 영화는 ‘500일의 썸머’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톰은 회사에 처음 입사한 썸머를 보고는 첫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그녀가 세상 전부이며 자신의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한다. 썸머와 말이 잘 통하고 모든것이 맞다고 톰은 생각한다. 톰이 좋아하는 것, 톰의 관심사, 톰이 살아온 삶, 톰의 생각. 톰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썸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으며 둘은 운명이라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썸머는 돌연히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들의 관계가 마치 시드와 낸시 같다며 말이다.
톰은 혼란스러워 한다. 함께 이케아에서 신혼부부 행세를 하던, 함께 서로를 나누며 행복했던 그들의 추억은 무엇이었나 하고 말이다.영화를 보면 중간 중간 톰은 링고스타가 좋다는 썸머에게 링고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며 이내 무시하기도 하고 이별 후에는 썸머가 초대한 파티에서 그녀를 위해 건축학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어쩌면, 톰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던 것 아니었을까?
톰이 썸머에게 반했을 때, 먼저 다가간 것은 썸머였다. 톰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톰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톰의 미래에 대해 조언해준 것도 결국은 모두 썸머였다. 썸머는 톰을 좋아했기에 더 대화하고자 하고, 더 알고 싶기에 그의 관심사, 그에 대해 더욱 귀 기울였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과 정서적인 교감을 하길 원하며, 그렇다고 믿고 그랬다고 기억한다. 심리학이론에 의하면 우리의 기억은 왜곡된다고 한다. 자신의 감정에 맞게 자신이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기억들은 과감히 지워진다고 한다.
우리 자신도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보면 헤어지는 과정보다는 헤어진 당시의 상황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영화 초반부에는 이런 내레이션이 흘러 나온다.
This is a story of boy meets girl. But, you should know upfront, this is not a love story. (이것은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할 점은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글 한주희 www.joseehan.blogspo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