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부자 '사유담(史遊談)'> 신들의 나라 그리스(5편, 그리스가 가진 풍경)

◆그리스인이 가진 ‘느림의 미학’
그리스 사람들은 참 느리다. 밥 시키고 모두 나오기까지 두 시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다. 먹고 나왔는데 배가고픈 적도 있다. 소화가 될 만큼 기다렸기 때문이다. 요즘은 여행과 관련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식당에 찾아가면 빨리 맛나게 나오기도 하지만 이 곳 마을 원주민식당인 타베르나(taverna)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단 주문과 함께 장보기가 시작된다는 건 잊지 말자. 난 치즈 설명만 한 시간을 들었다. 결론은 “내 친구가 만든 치즈다”였다. 얼마나 다행인지, 본인이 만들었으면 날 샐 뻔했다.
미워 할 수 없는 건 그들은 진실하고 따뜻한 사람들이다. 언제나 자상한 눈빛으로 대하는 민족성 속에서 나는 어머니 아테나를 보는듯하다. 느긋한 사람들이 올림픽을 준비할 때 생긴 일이라고 했다. 그 땐 올림픽이 한 달 밖에 안 남았는데 도로는 꽉 막혔고 심지어 주경기장 차광막 공사는 끝나지도 않았다. 숙소는 턱없이 부족했고 선수촌은 좁아서 누가 봐도 인원을 모두 수용할 수가 없었다. ‘올림픽의 리턴’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했다. 그러나 전혀 흔들림 없는 그리스 사람들이 가관이었다. 조직위원회는 분노했고 해결책을 문서로 요구했다.
그러자 그리스 정부는,
1. 여름엔 휴가철이라 80%가 외지로 나간다. 길 막힐 리가 없다.
2. 여름에 비 안 온다. 차광막 필요 없다.
3. 빈집 렌트 서비스한다. 그리고 바다에 수백 척 크루즈 띄워서 선수촌으로 쓸 거다.
우리 해양강국인거 알지?
신기하게도 정말 계획대로 된다. 그것도 잘~ 된다. 그래서 올림픽위원회가 물었다.
“이럴 줄 알았느냐?”
그러자 그리스는 “우리가 올림픽 하루 이틀 하냐? 3000년째 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고 한다. 결과가 좋으니 위트로 봐 주는 걸로 하겠다.

◆그리스판 태양의 후예
한국에선 새해 첫날 이었고 그리스에선 이월의 어느 날이었다. 배에 차를 싣고 자킨토스(Zacynthus) 섬에 왔다. 딸을 위한 새해선물이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덕분에 유명해진 난파선의 해변은 자킨토스 섬 안에 있으나 갈매기 날개처럼 거대한 절벽이 있어 걸어서 접근할 수 없었다. 정확한 이름은 쉽렉 비치(shipwreck beach)라고 했다.
가고 싶다면 배로 이동해야 하는데 타는 곳에 따라 두 시간에서 20분까지 시간이 소요된다. 중요한 팁은 겨울엔 전면 휴업이다. 배낭족들은 꼭 알아야한다. 널리 널리 알려주었으면 한다. 꼭 들어가고 싶다면 고기 배를 렌트해서 들어가야 했다. 도대체 왜 겨울에는 그 많던 배가 운행을 안 하는 걸까? 이유는 해수욕을 할 수 없는데 왜 가냐는 것이었다. 그건 그랬다. 해수욕장에 해수욕이 아니라면 갈 필요는 딱히 없다. 하지만 우리는 송중기라도 나타날까 싶어 찾아갔는가보다. 난파선은 송송커플이 세트로 설치한 줄 알았더니 아니란다. 1980년 해적선이 그리스 해경을 피해 도망치다가 실제로 난파한 것이라 했다.
역사를 살펴보니 트로이(Troy) 원정에 나갔던 자킨토스 장군이 표류하다 닿은 섬이 바로 자킨토스였다고 했다. 본토에 두고 온 두 아들은 못 만나게 됐지만 너무 아름다워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이상의 얘기는 평소 청어를 잡는다는 캡틴의 설명이었다. 자키토스 섬엔 이 곳 저 곳이 죽기 딱 좋은 곳이다. 가드레일도 없이 여기저기에 200미터 이상의 기암절벽이 아무렇지 않게 20㎞다.
송혜교 차가 떨어지기 직전 유언 남기던 곳도 여기고, 지뢰를 찾았던 곳도 여기라는 설명은 자킨토스에 목멘 따님의 설명이다. 나라면 크레타에 갔을 것이다. 나도 자식 못 이기는 부모가 되었다.
자킨토스 북쪽 절벽에 서면 멀리에 섬이 하나 보인다. 이타카(Ithaka) 섬이다. 그 섬은 작지만 하나의 폴리스였다. 그곳엔 꾀돌이 오디세우스(Odysseus)가 살고 있었다. 저 섬에 갈 것을… 오디세우스는 이름난 장군들의 자존심을 살살 자극해 트로이 전쟁에 참가시켰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킬레우스(Achilleus)였다. 전쟁에 나가면 죽는다는 걸 알았지만 천 년을 산다는 말에 전쟁에 나갔던 아킬레우스였다. 그렇게 나간 전쟁을 우리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 아킬레우스는 3000년을 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나가서 10년 싸우고, 돌아오는데 다시 10년을 떠돌았던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호메로스(Homeros)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 위대한 기록물이 <일리아드(Illiad)>와 <오디세이(Odyssey)>였다. 꼭 한번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기원전 1250년경에 벌어졌다는 트로이 전쟁은 신화일까, 역사일까?

◆해질녘의 수니온(Sunion)
수니온에 해가 진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온다. 이 만큼이면 됐다. 우아한 백조의 허벌나게 바쁜 발처럼 이제 일용직으로 돌아가자꾸나. 바람에 위로받고 땅에 의지했으면 그럼 됐지. 수니온 석양을 본다는 건 전생에 나라를 구한 자만이 가능하다 했던가. 내가 나라를 구한 모양이다. 못내 아쉽고 또 무언가 안타깝지만 돌아갈 곳이 있어 기쁘게 간다. 거짓말이다. 사실 여행을 떠나면 이상하게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는데 그 곳이 이 곳이다.
여신 아테나를 선택했으나 바다에 기댈 수밖에 없는 그리스 사람들은 포세이돈(Poseidon)을 놓을 수도 놓아서도 안됐다. 도시 아테네를 잃고 불같이 화가 난 포세이돈의 마음을 풀어주려 아테네 사람들은 기가 막힌 자리를 신에게 선사했다.
남도 끝 온 사방이 바다와 바람으로 둘러싸인 곳, 바이런이 사랑한 그 바다 수니온이었다. 얼마나 흥분했으면 바이런은 신전기둥에 글을 남겼다. 내가 했으면 구속감이었겠지만 계관시인 바이런이 방명록을 남겨 수니온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었다. 시인을 감동시킨 바다랄까? 이 바다에 감동한 바이런은 그리스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미노타우루스(Minotauros)를 죽이고 아테네의 강함을 보여주겠다던 테세우스(Theseus)가 검은 돛을 달고 돌아오자 아버지 아이게우스(Aegeus)는 힘없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래서 이 바다의 이름이 왕의 이름을 따서 에게(Aegean) 해가 되었다.
사실 아이게우스가 뛰어내린 곳은 아테네의 니케(Nike) 신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수니온의 포세이돈 신전이라 말하는 것은 역사적인 죽음에 적당하게 아름다운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기 위해 조작되고 윤색된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
글·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