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부자 '사유담(史遊談)'> 신들의 나라 그리스(6편, 그리스를 품은 사람들)

▲ 제우스가 사랑했던 테티스.

◆커피숍 차린 테티스(Thetis)

아킬레우스(Achilles)의 엄마는 스타벅스를 차린 녹색 물의 여신 ‘테티스’였다.(‘세이렌’이라고도 한다.)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는 신전에 황금 사과 하나를 던져놓는다. 그 사과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헤라(Hera), 아프로디테(Aphrodite), 아테나(Athena)는 황금 사과가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80살이 넘은 노인도 미인이길 바란다더니 여자들이 예뻐지고자 하는 소망은 언제나 같은가보다.

그래서 제우스(Zeus)는 판결을 미뤘다. 마누라 편을 들었다간 딸이 난리날테고 딸 편을 들으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뭐가 되겠는가. 곤란한 제우스는 판결을 멈추고 파리스(Paris)라는 트로이(troy) 왕자에게 선택권을 넘긴다. 파리스는 매력적인 제안을 세 여신에게서 받게 되는데 아테네는 승리, 헤라는 권력, 아프로디테는 가장 예쁜 부인을 약속한다.

남자라고 변할까? 남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쁜 여자가 정답이다. 그래서 권력과 승리를 버리고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줬고, 예쁜 언니 헬레네(Helene)를 선물 받았다. 그러나 헬레네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비였고 남편 메넬라오스(Menelaus)는 미케네 왕 아가멤논(Agamemnon)의 동생이었다. 경국지색이라고 너무 예쁘면 안 되나보다.

예쁜 헬레네를 얻는 대신 트로이엔 무서운 최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튼튼하던 나라가 망해버린 것이다. 그리스는 아가멤논을 중심으로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와 함께 트로이 원정대를 만들어 동쪽으로 진격한다. 그 때 등장하는 인물이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Odysseus)였다. 아킬레우스는 우리로 치면 계백이고 오디세우스는 김유신이다. 오디세우스는 전사라고 하기보단 책략가에 가까웠다.

트로이를 정벌하러 가서 10년이나 싸웠는데도 끝이 나지 않자 오디세우스는 마지막 해에 목마를 만들어 두고 신의 한수 놓는다. 전쟁을 포기하고 철수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남긴 것이다. 그러자 목마를 승리의 상징으로 여긴 트로이는 난공불락의 성으로 밀고 들어갔고 야음을 틈타 목마 안에서 나온 정탐꾼들은 트로이 성문을 열었다.

트로이는 망했고 헬레네는 남편 메넬라오스를 따라 스파르타로 돌아갔다. 이렇게 전쟁을 마무리 한 후 돌아오던 오디세우스는 웬일인지 집에 오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포세이돈(Poseidon)의 저주 때문이었다. 포세이돈의 아들 키클롭스(Kyklops)를 죽인 대가였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남겨진 구전이 호메로스(Homeros)에 의해 기록됐고 문학의 시작이 됐다.

호메로스는 노래를 불러주는 소리꾼이었고 우리로 치면 전기수(傳奇叟)였다. 장님이라면서 어떻게 기록 한 것일까? 이 책을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이 보고 진실이라 믿었고 기어코 찾아내 인류의 첫 발굴이 전개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강인한 엄마, 아프로디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자타공인 예쁘다. 어떠한 기록도 예쁜 것으론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나 행실은 썩 예쁘지 않다. 자신보다 예쁘면 안 되고 예쁜 척해서도 안됐다. 아프로디테 보다 예쁘다는 여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약을 뿌리라고 사주한 적도 있다. 아들 에로스(Eros)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푸시케(Psyche)에게 찾아갔다가 도리어 그녀에게 반하고 말았다. 카시오페이아(Cassiopia)여왕은 예쁜척하다가 거꾸로 앉아 평생 벌을 받는 별자리가 됐다.

툭하면 못 생긴 남편 헤파이토스(Hephaistos)를 버리고 아레스(Ares)와 사랑을 나눴고 바람의 상대는 아레스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때마다 망을 봐주고 엄마를 살펴주는 이는 아들 에로스였다. 인간의 모자관계를 생각하면 참 막장 엄마였다.

어느 날 올림포스 산에서 파티가 있어 한껏 차리고 참가한 아프로디테는 잘생긴 아들을 대동했다. 한참을 신나게 놀고 있는데 괴물 티폰(Typhon)이 쳐들어왔다. 갑작스러운 난장판에 신들은 손도 못 대고 도망을 쳤다. 하필 어린 아들을 데려온 아프로디테는 은하수에 몸을 던져 아들과 함께 물고기로 변신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발목을 묶고 아들과 힘겹게 헤엄쳤다.

엄마는 엄마였다. 깊은 마음은 하늘을 감동시켰고 지금도 아프로디테는 물고기가 된 아들을 데리고 다닌다.

그래서 물고기자리는 두 마리의 꼬리가 끈으로 묶여있는 형태란다. 기대 없이 만난 이야기는 울컥 감동이 된다. 신도 엄마였고, 엄마는 이런 법이었다.

▲해가 저무는 미솔롱기. 풍경이 장관이다.

◆ 바이런이 잠든 미솔롱기(Messolonghi)

해가 멋지게 지는 미솔롱기는 특이하게 해변이 바다로 튀어나와 있다. 8㎞로 가까이 염전처럼 둑을 만들어 바다로 나서고 있다. 방파제라 하기엔 도로 같고 도로라고 하기엔 목적지 없이 바다에 닿는다.

이 바다에 온 이유는 바이런(Baron Byron, 1788~1824)을 찾기 위해서다. 바이런은 그리스를 사랑했다.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를 연달아 여행하고 그리스를 마음에 뒀다. 이상하게 끌리는 곳이 그리스였다.

독립조차도 되어있지 않던 당시 그리스를 문학과 철학의 근원이자 유럽 정신문화의 본향이라 부르긴 힘들었다. 그러자 바이런은 인간 지성의 회복을 위해 오스만터키로부터 그리스의 독립을 주장했다. 많은 지식인이 공감했고 다리도 불편한 바이런은 모범을 보이기 위해 37살 젊은 나이에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나 일이라고는 펜 드는 일 밖에 없었고 운동이라고는 산책밖에 안 해본 그가 전쟁터에 선다는 건 말 그대로 픽션이었다. 1823년 겨울 배에 올라 그리스에 도착하자마자 결국 말썽이던 폐가 고생을 시키더니 그는 총 한번 들지 못하고 병상에 눕고 말았다. 그리고 1824년 4월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그 곳이 미솔롱기다. 그리스는 한 시인의 용기와 진심을 사랑했다. 그가 돌아간 100년 뒤인1924년, 사람들은 이 곳에 바이런 동상을 세웠다. 역사는 이렇게 꿈꾸는 사람을 기억한다.

바이런을 찾아 떠난 길에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 잊지 못할 해지는 풍경이 나에게 주어졌다. 아직도 눈을 감아도 보이는, 한참 세상을 불붙인 미솔롱기의 낙조였다.

매일 이렇게 힘겹게 태양신 헬리오스(Helios)는 포세이돈의 마차 트라가다를 몰고 해를 끌고 나왔다가 서쪽 바다로 해를 끌고 들어간다. 이 모습은 파르테논 신전 서쪽 페디먼트(Pediment)에 표현돼 있다.

▲아테네에 있는 바이런의 동상

글·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