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등 긴급상황땐 '빨간모자···'등 멘트

훈련-실제상황 구분 손님 안전대피 유도

“이제는 웃는거야 Smile again, 행복한 순간이야 Happy days, 움츠린 어깨를 펴고 이 세상속에 힘든일 모두 지워버려 슬픔은 잊는거야 Never cry.”

어느 날 오후 5시경, 대전 A백화점에서 방송을 타고 ‘엄정화의 페스티벌’이 울려 퍼진다.
순간 젊은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층인 2층 직원들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진다.

같은 시간, 4층 남성 의류 판매 층 직원들은 긴장하며 남은 시간 판촉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그러나 A백화점에 쇼핑 온 쇼핑객들은 ‘그저 음악이 나오나 보다’하며 무관심하다.

이처럼 ‘엄정화의 페스티벌’이 같은 백화점내 직원들의 표정을 다르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전지역 3개 백화점(세이, 롯데, 갤러리아)에는 백화점 직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방송이 있다.
이 같은 방송을 음어(陰語) 방송이라고 한다.

음어는 사전적 의미로 군대에서는 암호로 쓰이며, 정규적인 의미 이외의 따른 뜻을 전달하는 어구이다.
A백화점은 2층에서 그날 목표치의 매출액을 달성하면 엄정화의 페스티벌을 틀어준다.
2층 직원들을 격려함과 동시에 나머지 층들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렇듯 A백화점은 그날 매출을 달성했을 경우 각 층마다 방송되는 노래가 정해져 있다.
상황을 바꾸어 ‘아기공룡 둘리 주제가’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면 그날 5층(아동용품)이 매출을 달성한 것으로 직원들만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체 매출을 달성했다면 유럽의 ‘The Final Countdown’이 방송돼 직원들 기를 살려준다.
B백화점은 방송을 통해 직원들에게 조금 더 다양한 메시지를 전한다.

어느 날,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 주제곡인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울려 퍼진다면 이는 ‘밖에 갑자기 비가 오고 있으니 손님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백화점은 창문이 없어 쇼핑객들은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알 길이 없다.
이에 직원들은 이 음악이 흘러 나오면 “밖에 비가 많이 오네요, 가실 때 운전 조심하세요”라고 쇼핑객들에게 다정한 멘트를 전하게 된다.
눈이 오면 ‘러브스토리 주제가’가 방송되기도 한다.

아울러 3개 백화점은 화재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직원들만 알 수 있는 방송을 통해 쇼핑객들을 대피시키는 매뉴얼이 있다.
만일 ‘불이 났으니 대피하십시오’라고 그대로 방송한다면 쇼핑객들이 한꺼번에 출입구로 몰리면서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B백화점은 위급상황에 따라 다른 방송을 내보낸다.
“업무연락입니다. 점장님께서는 빨간 모자를 쓰고 0층 00브랜드로 와주십시오”라고 방송하면 “화재가 발생했으니 직원들은 속히 쇼핑객들을 안전한 곳까지 모시고 가십시오”라는 뜻이다.

이 같은 멘트가 백화점 내 전층에 전달되면 직원들은 평소 훈련받은대로 서둘러 쇼핑객들을 맡은 위치로 대피시키도록 돼 있다.

만일 “노란 모자를 쓰고 오십시오”라고 방송이 나온다면 독극물 테러, “파랑 모자를 쓰고 오십시오”라고 하면 폭발물 테러가 각각 감지돼 서둘러 쇼핑객들을 대피시키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방송 중에 ‘점장님이 아닌 지원팀장’으로 나온다면 이는 훈련상황이다.
A백화점은 화재 훈련 상황으로 “업무연락입니다. 기획상무님께서는 6층 이벤트 홀로 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방송한다.

A백화점에서 만일 “사장님께서는 6층 이벤트 홀로 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가 나올 경우, 이는 훈련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C백화점도 상황은 비슷하다.
C백화점은 화재 등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00색 티셔츠를 입은 네 쌍둥이 어린이를 0층 000브랜드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라는 방송을 내보낸다.

예전에는 상황에 따라 얼룩무늬 티셔츠 등 여러 가지 티셔츠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단순하게 이 한가지 방송만을 사용하고 있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