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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EBS 1TV에서는 현충일 특집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의 분수령, 장진호 전투’가 방송된다.

1950년 11월말, 평안남도 개마고원의 저수지 장진호. 미 제1해병사단 1만 2000명은 미 육군 7사단 병력 일부, 영국군 해병대, 한국군 등과 함께 압록강 진격을 위해 북상하고 있었다. 남북통일이 손에 잡힐 것만 같던 시기.

하지만 11월 27일, 압도적인 수적우세를 앞세운 중공군의 야간공격으로 전세는 단숨에 바뀌고 만다. 장진호 전투. 미국에서는 이 전투를 ‘Battle of Chosin Reservoir’라고 부르는데, 당시엔 일본어 지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미군도 ‘長津’을 일본어 독음 ‘Chosin’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장진호 전투는 2개월 앞선 인천상륙작전처럼 한국전쟁의 전세를 완전히 바꿔놓은 전투였다. 많은 학자들은 냉전시대 미국의 대외정책방향을 결정한 사건 중 하나로도 이 전투를 꼽는다. 미군은 10배 병력의 중공군에 포위를 당해 싸우며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다.

영하 3, 40도를 넘나드는 개마고원의 혹한은 중공군만큼 무서운 적이었다. 미 제1해병사단은 전멸위기에도 몰렸지만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퇴각에 성공했다. 전투 자체는 중공군의 승리였지만, 미군은 중공군의 진격속도를 늦춰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한지역에서 철수하게 해줬고, 10만 명 가까운 피난민도 흥남 부두에서 남한으로 대피시켰다.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증언과 전사학자들의 분석, 현장화면 등을 통해 한국전의 방향을 다시 바꾼 장진호 전투를 돌아본다. 이역만리로 날아온 미국 청년들은 미군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장진호 전투를 어떻게 겪어냈는지, 장진호 전투가 이들의 인생과 미국의 대외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아본다.

한편 EBS 1TV ‘한국전쟁의 분수령, 장진호 전투’는 6일 오후 12시 4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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