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들

지난해 1156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유일하게 ‘천만’ 타이틀을 얻은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일부는 그가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를 연출한 사람으로 알고 있겠지만(사실 이것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듯) ‘돼지의 왕’, ‘사이비’ 등을 연출한 애니메이션 감독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번주는 유머 대신에 폭력과 욕설을 담고, 한국사회를 해부하듯 까발리는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살펴볼까 한다.

 

 돼지의 왕은 중학교를 무대로 폭력과 계층이 구조화한 우리 사회를 보여준다.

# 강자-약자의 먹이사슬, 학교에도 고스란히

1. 돼지의 왕(2011)

회사 부도 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인한 경민은 자신의 분노를 감추고 중학교 동창이었던 종석을 찾아 나선다. 소설가가 되지 못해 자서전 대필작가로 근근히 먹고 사는 종석은 15년 만에 찾아온 경민의 방문에 당황한다. 경민은 무시당하고 짓밟혀 지우고 싶었던 중학교 시절과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철이 이야기를 종석에게 꺼낸다. 그리고 경민은 학창시절의 교정으로 종석을 이끌어, 15년 전 그날의 충격적인 진실을 밝히려 하는데….

‘돼지의 왕’은 중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소재로 폭력과 권력에 순응하는 약자들을 돼지로 표현하며 그들이 얻게 되는 열등의식과 비굴함, 그리고 저항하는 돼지들의 절망과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터넷 예매 시작 44초만에 매진됐고,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무비꼴라주상을 받아 3관왕을 차지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2012년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기도 했다.

 

 궁지에 몰린 유약한 인간에게 '믿음'은 도피처 혹은 힘이 되는 것인가?

# 기형적으로 뒤틀린, 믿음을 믿습니까?

2. 사이비(2013)

수몰 예정지역인 한 작은 시골마을에 기독교를 빙자한 사기꾼 최경식과 노름과 가정폭력을 일삼는 김민철이 들어온다. 사기 전과(前科)가 있는 최경식은 신심(信心) 깊고 순진한 목사 성철우를 내세워 마을의 수몰 보상금을, 김민철은 딸의 대학등록금을 갈취한다. 경식은 약효가 있다는 이상한 물을 팔고 집 잃은 사람들에게 천국 같은 마을에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수가 빤히 보이는 사기이지만 이미 터전을 잃고 좌절한 사람들은 그의 말을 무조건 따른다. 경식의 전과와 사기 수법을 알게 된 민철은 마을 사람들을 말려보지만, 이미 마을의 '문제인간'으로 알려진 그의 말은 경찰도 믿어주지 않는데….

사이비 종교를 둘러싼 인간의 허황된 욕망과 폭력성을 다룬 작품으로 연상호 감독 작품답게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나약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또 궁핍하고 좌절한 인간들이 그릇된 믿음을 갖게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믿음에 관한 질문을 쉴 새 없이 던진다.

2013년 세계 3대 판타스틱 영화제 중 하나인 제46회 시체스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애니메이션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같은 해 스페인에서 열린 제51회 히혼 국제영화제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영화 '부산행'의 프리퀄이지만 그 강도는 훨씬 살벌했던 '서울역'.

#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이다

3. 서울역(2013)

어느 날,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의 노숙자가 비틀거리는 가운데 집을 나온 소녀(심은경)와 남자친구(이준), 그리고 딸을 찾는 아버지(류승룡)가 이 곳에 함께 한다. 이윽고 서울역을 시작으로 이상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서울은 삽시간에 통제불능 상태가 되는데….

지난해 7월 20일 개봉한 영화 ‘부산행’의 이전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애니메이션으로 서울역이 먼저 제작되고 부산행이 그 다음 제작됐다고 한다. ‘부산행’에서 심은경이 연기했던 가출소녀 혜선이 부산행 KTX를 타기 전날 서울역에서 겪은 일을 다루고 있다.

인간의 살과 피를 원하는 좀비만큼이나 인간은 돈과 욕망을 좇는다. '부산행'과 마찬가지로 좀비보다 무서운 게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그 강도는 훨씬 살벌하다.

전체적으로 부산행의 프리퀄이면서도 연결고리가 많이 부족하고 오류가 많아 비난하는 의견도 꽤 많았다. 오죽하면 감독이 프리퀄의 의미는 알고 만든 작품이냐는 의견도 있었다.(연상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직접 느슨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긴 있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 상영 이후 관람객들이 ‘연상호의 전작에 비해 세부적인 묘사의 질이 떨어진다’는 평과 ‘연상호 감독만의 특색을 그대로 표현했다’는 등 호불호는 꽤나 갈리는 편이다.

<사진=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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